이어산 "상상과 환상의 중첩적+다중적 의미 포함된 시가 잘된 시"
이어산 "상상과 환상의 중첩적+다중적 의미 포함된 시가 잘된 시"
  • 뉴스N제주
  • 승인 2019.11.0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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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58)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58)

□이데아와 환상의 시 짓기

이데아를 넘어 (사진=이어산)
이데아를 넘어 (사진=이어산)

우리가 말하는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는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옛날에는 진리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절대적 진리를 이데아(ldea)라고 하는데 신의 영역이라서 불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절대적 진리란 없다고 한다. 그 중심에 바로 시(詩)가 있다.

현대의 시는 이데아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내려와서 가공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 가공의 세계는 바로 상상의 세계다. 상상의 세계에선 절대적 진리란 없다.

시적 대상을 그대로 보는 것이 이데아의 세계라면, 상상은 그 대상과 연계된 이야기를 찾아가는 작업이다. 모든 예술은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해도 될 만큼 상상력은 예술 창작의 핵심이다. 그것은 진리라고 믿어왔던 현상에 특수를 입혀나가는 과정을 말하는데 이 '특수'란 시인의 상상에서 나온 새로운 의미다. 그러나 시적 대상과의 개연성을 무시하면 이 '특수'는 허물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할지라도 적합한 언어를 찾아내고 제자리에 끼워 넣는 능력이 없으면 좋은 시가 완성되지 않는다

시에서 이데아라고 할 수 있는 '보편'은 1:1의 현상으로 보는 반면 '특수'는 1:다(多)다. 그것을 결합하여 실재계(개연성의 새로운 의미)로 나타내는 것이 시 쓰기다. 그러나 더 깊고 폭넓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철학자 칸트가 말했듯 상상에서 환상의 세계로 나갈 것을 현대시는 주문한다.

'상상'이란 유추와 개연성의 관계라면 '환상'은 믿음과 관계가 있다.

환상이란 믿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개념이다. 그래서 믿음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것이다.  상상과 환상의 통합을 통해서 현대시는 더욱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다.
그 상상과 환상의 결합은 다음과 같은 시에서도 발견된다.


   골목 어귀에 웅크린 그늘은 아르마딜로
   누군가 툭툭 치거나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닥치면

   둥굴게 둥굴게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야행성이지
   보이지 않는 눈, 들리지 않는 소리
   공구리 바닥 틈새로 사라진 햇살

   너무 마르면 그냥 뚝 부러지거나
   너무 젖으면 질기게 휘어지는
   이곳저곳에 남은 이야기들

   조근조근 균열이 난 담벼락은
   헐거운 기억에 익숙하고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에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은
   국어사전 귀퉁이에 자리한 골목에서
   오랫동안 전해지는 이야기로
   어금니 같은 등딱지를 만든다

      - 서동균, <그늘> 전문

1연과 2연은 포유류인 '아르마딜로'와 연계된 상상력을 동원한 것으로 본다면 3, 4연은 환상을, 마지막 연은 상상과 환상을 결합한 시로 읽을 수 있다.

독자는 시를 읽고 공감이 되면 감동하게 되고, 그 감동에 숨겨진 또 다른 감동을 발견하게 되면 명시로 기억할 것이다. 따라서 사물에서 보이는 이데아의 세계에서 상상과 환상으로 중첩적이고 다중적 의미가 포함된 시가 대다수 좋은 시의 반열에 오르고 있음을 시를 쓰는 사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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