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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소양강처녀 기다리는 호반의 도시 '춘천'
[여행]소양강처녀 기다리는 호반의 도시 '춘천'
  • 현달환 기자
  • 승인 2019.10.05 0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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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모임으로 2박3일 남이섬, 춘천 일대 관광

3일, 태풍 '미탁'으로 제주의 날씨는 엉망진창이었다.

아침 6시에 깨어나 제주공항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태풍으로 전날까지 항공기가 전면 운항이 금지돼있던 터라 아침 일찍 첫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입구에 들어서니 하늘에 비행기가 제주공항으로 도착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항공기가 정상적으로 운항이 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다행이도 공항은 한산했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발권이 이루어져 탑승 준비를 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한산한 덕인지 정확한 시간에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는 약속을 잘 지켰다.

날씨는 좋았지만 비행기가 이륙 후 5분까지는 덜컹거려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지며 기도하게 만들었다.

잠시 날씨가 안 좋았던 곳을 벗어나니 햇살이 비추고 날씨가 아주 좋았다.

서울에는 도착예정 시간에 거의 비슷하게 맞춰져서 안전하게 도착했다.

서울의 공기는 태풍의 영향이 전혀 없었다. 다만 전라도와 경상도, 강원도 해안 쪽을 따라 지난다는 동서부부의 날씨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서 우리는 지하철에 올라타고 용산역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사실 강원도 춘천을 향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 강원도 설악산 등을 돌아봤지만 이번에는 춘천에서 맛있는 닭갈비와 막국수를 맛보자는 의견일치로 인해 바쁜 시간들을 맞추고 함께 길을 나선 것이다.

용산역은 그야말로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인 듯 했다. 이미 지하철로 이동해 기차 여행을 하자는 의견으로 여행갈 때부터 가볍게 짐도 줄이고 떠난 이번 여행계획에 따라 용산역에서 강원도 춘천으로 이동하는 코스의 첫 단추였다.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성급하게 달려온 우리는 용산에서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어 식당에서 요기를 하고 가자는 의견에 따라 식당에서 간단하게 곰탕과 국수 등 취향에 따라 식사를 했다. 이어 심심하지 않게 간단하게 기차에서 먹을 어묵 등을 구입하고는 기차에 올랐다.

iTX 기차는 깨끗했다. 6시에 일어나 서울에 서둘러 온 터라 시간이 9시가 다되고 있어 의자에 앉아 있으니 자연스레 눈이 잠겼다. 잠시 눈을 붙였다.  춘천으로 가려던 우리는 약 40분간의 이동으로 가평역에서 멈췄다.

남이섬을 탐방하자는 의견으로 인해 가평역에서 하차하고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남이섬으로 향했다.

남이섬은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배용준 최지우의 드라마 촬영 장소로 인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우리는 부푼 기대감을 갖고 남이섬에 도착했다. 남이섬은 가평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가야한다.

많은 인파가 몰려 그야말로 남이섬다운 면모를 과시하고 있었다. 제주에서는 좀처럼 볼 수가 없던 호수를 따라 우리를 태운 배는 약 10분도 안되어 남이섬 나루터에 다다랐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남이섬의 신록에 감탄을 하고 말았다. 다양한 수종으로 인해 온갖 식물원을 방불케하는 남이섬의 모습에 조금은 부러웠다.

이런 관광지 하나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 까지 찾아와서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다는 사실에 부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남이섬은 개인의 사유지라는 점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개인택시 기사의 말에 이런 관광지 하나가 주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업체나 사람들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고 있다는 사실에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남이섬에 가평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는다는 방침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하고 있었다.

택시 기사에 따르면 남이섬은 개인땅인데 다리를 놓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왜냐하면 나루터에서 배를타고 이동하는 관람비가 수입이 엄청난데 다리를 놓으면 그 수입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택시기사 입장에서도 나루터에서 기차역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 사람도 있는 데 바로 다리가 생기면 택시를 타지않고 자가용으로 남이섬에 들어가는 것으로 인해 수입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여하간 남이섬의 문제는 잘 풀리겠지만 남이섬을 둘러싸고 호수에서 온갖 수입을 얻는 곳이 있는지, 제주의 바다가 이처럼 잔잔한 곳이 어디있었는지 생각해봤지만 이렇게 잔잔한 곳은 제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거친 파도로 바다의 위용은 정적인 면보다 동적인 면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는 이런 천연의 자연을 갖고 있는 남이섬의 주인은 물론 주위 사람들과 지역의 관공서 등 관계를 갖고 있는 모든 사실에 부러웠다.

그렇게 오랫동안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빵과 커피 등으로 점심까지 먹고는 다시 배를 타고 나왔다. 춘천으로 향해 가기 위해서다.

춘천으로 향하는 기차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주말이었으면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려 서서 가야될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많은 인파가 몰리지 않아 자리에 앉아 올 수가 있었다.

춘천역에 도착하고는 택시를 타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가벼운 차림으로 식사를 하자는 공통된 의견으로 인터넷으로 예약한 숙소에서 역 1시간 넘게 있다가 다시 숙소를 나왔다.

방송에 맛집으로 유명했던 춘천닭갈비, 막국수 집을 찾아 다시 이동했다. 맛집에 도착해보니 줄을 서서 대기 중이었다.

그러게 많은 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기서 식사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 다른 식당에는 줄이 없었는데 유독 이곳에만 기다리며 식사를 하고 있어서 막상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기에 기대감이 컸다.

닭갈비와 기타 내장 등을 시키고 주류는 막걸리를 시켰다. 가평에 잣막걸리가 유명해서 이 막걸리를 먹으려고 하니 이곳은 없고 그냥 옥수수 막걸리를 시켜 서로 건배를 외치며 오늘 하루 아침 일찍 일어난 이야기부터 이제까지 이야기를 하면서 걸죽하게 한 잔 먹어보니 맛이 달달했다.

이어 구어진 닭갈비를 한 점 상추에 올리고 부추와 마늘 등으로 양념에 찍어 먹으니 부드럽게 입에 들어갔다. 닭갈비는 자꾸 번갈아가면서 뒤집어줘야 한다고 주인장이 말해서 타지 않도록 해서 먹으니 참 맛이 있었다.

사실 막걸리를 잘 안 먹는 데 이 날 4병이나 먹었다. 마지막 식사로는 밥도 시켰지만 막국수를 시켜 먹으니 국수보다 편안하게 입안으로 저절로 들어갔다.

고기와 함께 먹으니 왜 이리도 맛이 있던지, 사람들이 왜 ‘춘천닭갈비’, ‘막국수’라고 외치는 지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명품이었다.

식사를 다하고 다시 차를 타고 오는 데 조금은 취한 느낌이었는지 우리는 소양강처녀를 만나기 위해 다리 근처에서 차를 세웠다. 숙소근처에 약 1km에 위치한 소양강처녀 동상과 노래비는 화려한 조명이 찬란한 밤에 당당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소양강스카이워크’로라는 다리를 만든 조형물을 보기 위해 입장료 2000원을 내고 다리에 들어가서 각자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리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바닥에 보이는 다리가 조금은 공포감이 조성됐지만 이내 그런 긴장된 모습은 사라지고 주위에서 향하는 조명의 아름다움에 연신 사진찍기에 바빴다.

특히 밤하늘에 비친 달은 주위 조명과 한 몸이 된 듯해 더욱 멋진 광경이 조성됐다.

한참이나 지난 후 우리는 숙소까지 걸어서 들어왔다. 저녁에 만찬이라도 한 것처럼 식사를 많이들 한 탓인지 배가 아직도 꺼지지 않았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조금 있으려니 다른 가족들은 잠으로 빠져들고 나 혼자 있다가 밤 12시 가까이 되서야 잠을 청했다.

그렇게 첫날의 기나긴 여행의 기억은 강원도 춘천의 밤으로 깊어갔다.

잠을 자고 있는 데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다른 가족은 벌써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부산하게 씻고 다시 숙소를 나섰다. 2박을 같은 곳에서 할 것이라서 가방은 들지 않고 가볍게 떠났다. 우선 아침밥을 먹을 곳을 찾았다.

조금 걷고 곰탕집을 찾아 걸어 나섰다. 강원도교육청 앞에 위치한 ‘한소담’이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주방장이고 아들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곰탕은 김치와 국물 등을 넣고 배부르게 먹었다. 이어 교육청 앞에서 택시를 타고 소양호 선착장으로 달렸다.

청평사에 가기 위해서다.

소양호 선착장에서 약 15분 정도 소요되는 청평사에서 우리는 제대로 힐링을 하고 왔다. 30분마다 배가 왕복하고 있는 데 20명에서 30명 정도가 같이 배를 타고 옴직이고 있었다.

선착장에서 우리는 걸어서 청평사로 자리를 옮겼다.

정평사는 아름다운 사찰이었다.

올라가는 길따라 물이 흐르는 소리는 청량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기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나만이 아닌 모든 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푸른 신록이 우거진 청평사에 발걸음 옮길 때마다 “어떻게 이런 곳을 알고 사찰을 지었을까?”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관광객들도 많이 이곳 청평사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뒤에 위치한 오봉산의 위엄은 숨이 막힐 정도로 빼어난 광경으로 자연의 위대함을 뽑냈다. 파란 하늘아래 빛나는 저 오봉산은 미남처럼 보였다.

역시 강원도의 사찰들은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멋진 사찰들이 탄생되고 있음을 느꼈다.

이곳 청평사는 관광지라서 그런지 주위에 식당들이 많이 장사를 하고 있고 찻집과 기타 선물 등을 파는 포차들도 즐비하게 늘어섰다.

먹거리도 좋아서 오고가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꼭 무엇인가를 먹고 마신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여기서 배를 타고 나가려면 한참 가야되는 데 먹거리가 여기가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곳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고 또한 배가 촐촐할 시간이었다.

우리 일행도 여기서 메기매운탕과 더덕구이, 메밀전병과 칡즙을 먹고 기운 센 몸을 얻게 됐다.

시계바늘이 3시경을 가리킬 때 다시 가평사에서 소양호로 돌아왔다. 오는 도중에 카카오택시를 불러 바로 배에서 내리자마자 시내로 이동해서 시간을 절약했다.

이후 원도심에 위치한 참 좋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우정을 과시했고 오래된 성당에서 기도도 하고 성당의 위엄도 체험했다.

오늘 저녁은 와인과 고기를 숙소에서 구어 먹자는 의견으로 통일했다. 시내에서 돌다 하나로 마트에 들러 고기와 채소 등을 많이 사고 왔다.

다시 숙소에 도착하고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미 조금은 지친 상태로 피로 회복을 위한 준비시간이었다.
오늘 하루도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다. 그래서인지 피곤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난 후 일행들이 다시 뭉쳤다.

방안에서 TV를 보면서 잠시 쉬고 있는 데 밖에 나가니 이미 만찬의 준비가 돼 있었다.

이미 숯불에 준비된 고기와 함께 밥상에 올려진 메뉴들이 먹음직스러웠다. 밥은 먹지도 않았고 오로지 고기와 채소로만 입안을 채웠다.

거기다가 와인 한 잔 곁들이니 금상첨화였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와인 2병을 전부 먹고 고기도 부족한 점이 없이 충분하게 먹었다.

그러한 시간이 점점 깊어가 자리를 정리하고 방에 와서 쉬려는 데 일행이  “근처에 빵 전시하고 있다‘는 말에 두리번거릴 새 없이 다들 택시를 타러 밖으로 나갔다.

택시를 잡아타고 가보니 그야말로 빵 카페였다. 나무들이 울창하게 엮어진 숲속의 나라 같았다.통나무로 만든 집처럼 통 유리로 장식이 됐고 조명들이 화려하게 비추고 있었다. 또한 온갖 뻥 종류를 만들고 팔고 있었다.

유독 아이들이 많이 찾아왔다. 우리는 저녁을 든든하게 먹은 터라 빵을 조금 사서 먹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서로 씻고 마무리하며 내일을 위해 꿈나라로 들어갔다.

3일째,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식사를 하고는 서울로 돌아왔다. 2박3일이라는 공백으로 인해 마음이 조금 불안했다. 그래서 좀 더 빨리 제주로 향하고 싶은 맘에 1시간 반 정도를 아끼고 단축시켰다.

이러한 이유는 내가 주말에 제주에서 만나야 할 계획이 있어서 빨리 내려가자는 의견으로 조금 더 알찍 표를 앞당겼다. 5시30분에서 2시간 정도 앞당겼다. 비행기 표를 오히려 취소하고도 환불받았다. 3시반정도의 요금이 오히려 더 저렴했다.

서울에 도착한 우리는 동서네 아파트 부근에 위치한 참게메기탕으로 점심을 하고는 동서네 집에서 커피를 마시고는 조금 쉬다가 택시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를 타고 되돌아왔다.

다시 제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제주는 역시 섬이라서 장점이 많다. 제주의 고향과 춘천의 이미지를 떠올려 봤다.

언제부터인가 제주는 답답한 도시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춘천은 그래도 복잡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소양강 처녀로 인해 춘천시민이 다들 먹고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소양강처녀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제주의 자부심은 무엇일까?

많이 있겠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아직도 18세인 소양강처녀의 노랫말이 귓가에 들리고 망부석처럼 서 있는 모습이 아른거린다.

우리 제주에도 진정 18세인 소양강처녀가 다시 찾아오려나. 그런 멋진 이미지가 이제 제주에서도 곷이 피어야 한다.

퀴즈. 소양강처녀 동상 왼손에 잡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소양강처녀 동싱
소양강처녀 동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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