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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시 창작이란 무질서한 사물을 질서화 시키는 작업"
이어산 "시 창작이란 무질서한 사물을 질서화 시키는 작업"
  • 뉴스N제주
  • 승인 2019.10.04 21:5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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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54) 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54)

□무질서의 질서화와 시의 골격

억새와 풍차 (사진=이어산)
억새와 풍차 (사진=이어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져있다. 역사 이래 사람들은 보이는 사물과 대상, 보이지는 않으나 느껴지는 것까지 상징적 언어로 구분하여 왔다.

이것은 인간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의 세계, 즉 보편적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로 발전시켜 왔고 사람의 지혜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진리는 계시적 언어, 또는 영적 언어로 구분지어 신(神)의 영역으로 남겨두기도 했다.

시인은 신의 영역 바로 아래 단계인 형이상학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언어를 축약하여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세상 모든 예술의 제일 앞자리에서 거명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를 쓸 때 우선 시인의 자세부터 배워야 하는데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시만 좋으면 훌륭한 시인인양 알아주는 작품성 지상주의가 우리 시단에 인성이 덜 성숙된 시 노동자나 시 기술자를 양산하기도 했다. 요즘은 시만 잘 쓰는 사람이라고 우대받는 시대가 지나고 있다.

이제 사람다운 시인, 시에 값하는 시인이 진정한 시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가 시를 쓴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보편의 세계에서 특수의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보편에서 특수를 찾는 작업'은 시인의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 기억해야할 작법이다. 그러나 보편적 현상을 끌어와서 시를 써 보려고 하면 무질서하고 가닥이 잡히질 않는다.

그래서 시 창작이란 무질서한 사물을 질서화 시키는 작업이라고도 한다. 시에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는 말은 시의 골격을 갖추라는 말이다. 골격을 갖춘다는 이야기는 시적 주제에서 이탈하여 이 말 하다가 저 말 하거나 난삽하여 무슨 말인지를 오르는 잡문을 쓰지 말라는 이야기다.

즉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여서 그 주제와 연관되는 간접적인 이야기나 이미지로 연결되는 확장성 있는 시를 쓰라는 말이다. 이 연습에 게으름을 피우면 시의 실력이 늘지 않는다.

시를 잘 쓰려고 하지 말자. 시가 되도록 쓰자. 이 말도 아주 중요하다. 화려한 언어를 동원하여 아름답게 쓰려고 하면 시도 잘 안 되지만 그런 시는 그 화려한 기교가 시의 감동을 까먹어버린다.

감동은 독자가 느낄 수 있도록 시인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담담하고 쉬운 보통 말을 사용하되 말의 조합을 제대로 하는 노력이 시를 잘 쓰는 방법이다. 말의 조합을 잘 한다는 것은 시의 골격과도 직결 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논리가 아니라 비논리를 논리처럼 말하는 작업이고 드러난 뜻이 아니라 감춰진 또 다른 이야기를 쓰는 방법이다.

논리가 보편적이라면 비논리의 논리는 주관적 특수성을 띠는 것이다. 그렇게 써놓고 보고 또 보고 어색한 부분을 고쳐나가는 것이다. 시를 써놓고 밤새도록 퇴고를 했기에 고칠 게 더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전에도 말했듯이 그것이 바로 초고(草稿)다.

하루 이틀 여유를 두었다가 또 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된다. 그때 또 고쳐라. 그것이 퇴고다. 퇴고는 여러 번 할수록 시가 단단해 진다.


   나무는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
   늘 비어서 슬픔의 하중을 받던 곳
   그쪽으로 죽음의 방향을 정하고서야
   꽉 움켜잡았던 흙을 놓는다
 
   새들도 마지막엔 땅으로 내려온다
   죽을 줄 아는 새들은 땅으로 내려온다
   새처럼 죽기 위하여 내려온다
   허공에 떴던 삶을 다 데리고 내려온다
   종종거리다가
   입술을 대고 싶은 슬픈 땅을 찾는다
 
   죽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서 있다
   아름다운 듯 서 있다
   참을 수 없는 무게를 들고
   정신의 땀을 흘리고 있다
 
      -최문자, <닿고 싶은 곳> 전문

우리가 시 쓰기에 실패하는 이유야 많겠지만 초보자들이 가장 안 되는 부분이 시의 주인공이나 등장 하는 대상에게 확실한 역할을 주는 작법이 서툴다. 다시 말해서 골격이다.

위 시는 '나무'라는 주제에 끝까지 집중한 시다. 시가 화려하지도 않지만 그 나무를 이야기 하면서 결국 생명에 대한 시학으로 치환 되고 있는 것이다.

 이어산, <생명시 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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