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내용과 형식의 일치 통한 긴장감 있는 시가 아름다운 것"
이어산 "내용과 형식의 일치 통한 긴장감 있는 시가 아름다운 것"
  • 뉴스N제주
  • 승인 2019.09.2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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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52) 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담장의 끝 (사진=이어산)
담장의 끝 (사진=이어산)

■토요 시 창작 강좌(52)

□시 속으로 산책하기

인생의 길을 바쁘게 걷거나 뛰어다녔던 사람도 길을 천천히 걸어볼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누가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러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여유는 살아가는 형편과 관계없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시 쓰기도 인생의 오솔길을 산책하는 것과 같아서 바쁜 삶의 현장에서도 짬을 내어 글 한 줄 쓰고 시 한 편 읽는 일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되고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렇다.

시란 우리가 그동안 무관심하게 스쳐 지나간 것들을 발견하는 것이고 살아온 길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감성이다. 감성이란 세상에 널린 것들의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표상(이미지)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소설(산문)은 이야기를 서술하는 서사(抒事)문학인데 반해 시는 인간의 감성과 생각을 그려내는 서정(抒情)문학이다.

'서정'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사람의 감정과 정서를 말한다.

따라서 '서정시'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개인의 정서를 구체적이고 개성적인 것으로 육화(肉化)시켜서 독자에게 보고하는 1인칭 문학형식이다.

그래서 시는 객관적인 것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인 개개인의 정서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특히 시의 본 모습은 '감동으로 말하는 문학양식'이기에 감동이 없는 시는 좋은 시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


바로 그 자리
그곳에 그대가 있지요

나, 세상의 버려진 귀퉁이
모난 돌맹이 되어 굴러다닐 때
사람의 불빛이 한없이
쓸쓸해질 때
저녁 안개처럼 다가와 내 손을
슬며시 잡지요

비가 오면 비의 아름다움으로
눈이 오면 눈 나리는 날의 순결함으로
꽃핀 날의 눈부심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내게 주고는

바람 부는 거리에서 숨을 멈추고
우리함께 날아올랐지

바로 그 자리 그곳에
햇빛 드는 우듬지로 남아
그대는 서고 나는 앉아서
오늘은

눈 시린 푸른 하늘을 마냥 바라보지요
아낌없이 비워버린 그 속내를
들여다보지요

- 최춘희,<산책> 전문

오늘은 위의 시를 설명하지 않으려한다. 시 속으로 들어가 보기를 권하는 뜻이다. 시는 읽은 양이 아무리 많아도 그 시 속으로 산책하지 않았다면 안 읽은 것과 마찬가지다.

제대로 산책을 해본 사람은 그 길을 잘 안다. 그리고 그 길엔 무엇이 있으며 새가 지저귀는지 어떤 꽃이 피고 지는지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시는 시의 오솔길을 제대로 산책해본 사람(제대로 된 독자)이 쓸 수 있다.

그것은 독서의 양이 아니라 독서의 질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시인은 그가 쓴 시의 양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밀도와 질로 승부한다.

이 말은 짧거나 긴 시에 관계없이 언어를 얼마만큼 적재적소에 배치했으며 내용이 나와 어떤 고리가 있으며 공감하거나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를 썼느냐의 문제와 연결된다.

적게 말하되 언어의 밀도와 질을 적정하게 하는 작업, 결국 나를 드러내는 작업이 진정한 시 쓰기다.

무슨 모티프로 시를 썼다할지라도 결국 당신 삶의 편린을 담아야 제대로 된 당신의 시가 탄생하게 된다.

현실이 힘들어도 산책을 할 수 있는 오솔길 하나는 갖고 있어야 덜 슬플 것이다.

시적 아름다움이란 '긴장(tension)'을 의미한다. 즉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통한 긴장감이 있는 시가 아름다운 것이다.

반대로 느슨하게 풀어져서 자극이 없는 말은 수다나 하소연, 또는 넋두리에 불과하지 시가 아니다. 감정을 무차별적으로 배설하는 것도 시가 아니다.

적절하게 절제하고 남김없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반만 말하고 그 뜻을 감추는데 시의 묘미가 있다.

시가 시로서의 생명을 갖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표현된 말들이 일으키는 정서적 파문이다.

그 파문은 문면에 드러나지 않은 침묵에도 많은 말이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 이어산,<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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