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수 칼럼](2)명상을 하면 나를 넘어 세상이 보인다
[박태수 칼럼](2)명상을 하면 나를 넘어 세상이 보인다
  • 뉴스N제주
  • 승인 2019.09.1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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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만나는 명상 칼럼(2)
박태수 제주국제명상센터 이사장

‘의식확대’라는 개념이 이해되지 않아 매우 답답한 때가 있었다.
의식을 확대한다는 말이 확연하지 않아서였다. 그러다가 인도 비하르 요가대학에 갔을 때 그 대학 총장을 만나 궁금증을 물어보았다.

“의식확대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파이프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손으로 작은 구멍을 만들고 그것으로 세상을 보세요. 어떻습니까? 그 구멍만큼 세상이 보이지요? 다음에는 좀 더 크게 구멍을 만들어 보세요. 어떻습니까? 더 크게 보이지요? 이번에는 손을 떼고 세상을 보세요. 어떻습니까? 이전보다 훨씬 크게 세상이 보입니다. 이처럼 의식확대란 세상을 알아차리는 의식의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그 때 예를 들며 가르쳐준 ‘의식확대’에 대한 의미는 두고두고 나의 인생을 의식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자신의 습관대로 세상을 바라본다. 보던 것을 더 자주 보게 되고, 싫어하는 것을 더 멀리하게 된다. 그것은 나의 무의식에 그러한 행위들이 반복적으로 쌓여서 길이나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에서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행위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오래전 일이다. 가까운 봉우리(별도봉)가 있어서 아내와 나는 매일 아침 그 봉우리를 돌아오곤 했다. 어느 날 봉우리를 돌아 좁은 길로 오는데 한 아주머니가 그 길에서 체조를 하고 있었다.

명상을 하면 나를 넘어 세상이 보인다.(사진=박태수)
명상을 하면 나를 넘어 세상이 보인다.(사진=박태수)

‘비켜 주세요.’라고 요구하기도 그렇고 하여 그냥 길옆 도랑을 건너 밭으로 갔다가 다시 그길로 걸었다. 가면서 돌아보니 내 뒤의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걸었다. 걸으면서 문득 ‘저 아주머니의 의식범위(한계)는 어느 정도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은 여러 사람이 지나가는 길인데, 자기를 위해 서 만 사용한다. 체조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괜찮다. 그런데 그녀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도랑을 건너가야 하는 불편을 겪는데도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게 문제다.

그녀의 의식은 자기만을 볼 수 있도록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눈으로는 세상을 봐도 마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는 자기만을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나만 빨리 가면 되는 운전기사, 나만 먼저 타면 되는 버스 승객, 나만 불편하지 않기 위해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사람 등. 명상을 하면 의식이 맑아지면서 나뿐만 아니라 세상이 보인다. 나라고 하는 개인의식이 강할 때 세상이라고 하는 공동체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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