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원도심 북성로에 위치한 스튜디오126은 조기섭 개인전 《극점을 지나, 경계에 서서》를 개최한다.
조기섭 작가는 자연을 보는 우주적 관점 안에서 생과 사의 순환에 대해 꾸준히 탐구해 왔다. 한국화를 기반으로 은분이라는 특수 재료를 사용하면서 수차례 쌓고 갈아내는 수행의 형태로 작업에 임한다.
자연물과 인공물에 빗대어 자신의 세계관을 표현하면서 회화에 설치 작업 방식을 접목, 확장해 나가는 변화 과정 또한 주목할 만하다.
한편, 조기섭은 스튜디오126의 전속 작가로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지원경영센터에서 후원하는 예비전속작가제의 지원을 받고 있다.
조기섭 개인전 《극점을 지나, 경계에 서서》는 작가가 2년간 준비한 신작 5점을 선보이며 10월 9일(수)부터 10월 31일(목)까지 진행한다.
자세한 사항은 스튜디오126 인스타그램 계정 (www.instagram.com/studio126_jeju)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I. 전시개요
- 전 시 명 : 조기섭 개인전 《극점을 지나, 경계에 서서》
- 전시기간 : 2024.10.9.(수) - 10.31.(목) / 22일간
- 전시장소 : 스튜디오126 (제주시 북성로27, 2층)
- 관람시간 : 10:00 – 17:00 / 일요일 휴관(목요일 15:00분 마감)
- 장르/작품수 : 회화 5점 :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 예비전속작가제
오프닝 : 2024.10.9.(수) 18:00
만남: 2024.10.12.(토) 19:30 (진행: 구윤지 독립 큐레이터)
II. 전시내용
조기섭은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일상의 큰 부분으로 치환한 성실한 작가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목도해온 삶과 죽음이 유기적으로 연계되고 교차되는 자연 이미지(바다, 하늘 등)에 대한 사유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2011년도부터는 공업용 도료를 활용한 매체인 은분(銀粉) 실험을 지속해오고 있다.
그는 날마다 종이에 은분을 곱게 펴 바르고 다시 그것을 갈아내는 수행적 작업을 1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반복해왔다. 청년 작가로 시대적 유행이나 시장의 요청에 민첩하게 반응할 법도 하지만, 조기섭은 자신이 채택한 장면과 질료를 끊임없이 파고든다.
우리의 시대에 이러한 집요함과 근면함이 다시금 소중해지는 이유는, 생각할 겨를 없이 빠른 속도로 새로운 것들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 급급한 동시대적 예술 상황 속에서, 이러한 흐름을 거스르며 사유의 틈을 열어주는 역할은 성실한 예술가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조기섭의 작품들과 관련하여 색채와 여백이라는 요소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중세 시대 이콘이나 고려시대 불화 등 여러 종교화에서 금빛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신적 존재의 존엄을 더하는 숭고의 장치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색을 최소한으로 절제한 모노크롬이나 무채색의 사각형 그림들은 감정의 따스한 온도를 배제하고 스스로 차가운 0도(zero degree)의 장소로 이동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조기섭의 은분이 지니는 차가운 성질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작가는 은분을 바르고 다시 갈아내는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반복한다.
그리고 노동을 통해 다른 두께가 지니게 된 은빛의 면과 선은 확실히 덜 감성적이고 더 이성적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차갑게 가라앉은 그 바탕에 은분을 다른 색의 분채와 섞어 칠한 하늘, 지붕, 가지, 물결 등은 작품이 설치되는 장소와 빛에 따라 다른 작품으로 변모시킨다.
따라서 조기섭의 작품은 여러 차례 보아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장소와 빛의 컨디션에 따라 항상 다르게 보이는 마술적 장치가 된다.
[글_김지혜(미학)일부 발췌]
이번 전시에는 종묘, 물결파, 나이테, 구상나무 고사목을 그린 그림이 전시된다. 그림의 대상이 된 것들은 모두 죽음의 그림자를 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은 완전한 소멸이 아닌 생과 맞닿아 있다.
이를테면, 왕가의 위패를 모신 종묘는 지극한 예를 다해야 할 곳으로 산 자들의 세계에 실존하고, 백골을 닮은 구상나무 고사목은 죽어서도 생의 시간만큼 제 자리를 지킨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 섞인 시공간의 배경에 원경의 산과 근경의 바위가 구름과 빗속에 어우러진 풍경을 그린 <음운>은 급류에 휩쓸린 존재들의 풍경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 장면들을 <나이테>와 <터무늬>라는 두 점의 소품이 이어준다. 나무들은 여름의 생장과 겨울의 일시적 죽음의 기록인 나이테를 제 몸에 새긴다. 수면에 생성되는 동심원의 파동은 생성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소멸하면서 더 넓은 지경으로 확장한다. <나이테>와 <터무늬>는 만물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더 큰 차원을 포괄하는 순환 고리로 얽혀 있음을 전한다.
종묘를 그린 <구름의 그림자>와 구상나무 고사목을 그린 <죽어도 죽지 못하는>은 형상 배치의 정석과 파격을 보여준다. <구름의 그림자>는 대형 화폭의 너른 공간에 종묘의 정면을 가득 채워 그림으로써 죽음을 기념하는 건축이 산 자들의 세상에 떨치는 권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구상나무를 그린 <죽어도 죽지 못하는>은 작가가 시점을 다루는 운신의 폭을 보여준다.
산행길에 스쳐 지나가게 되는 구상나무 군락은 세 개의 시점에서 세 번 새롭게 파악된다. 산행길에 스쳐 지나가며 보는 근경의 형상,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군락의 형상, 산행 후에 떠오르는 중첩된 형상이 그것이다.
36개의 분절된 화면 속에 자리한 구상나무 가지 각각의 그림은 근경에서 포착한 형상이겠으나, 이것이 서로 필연적인 연결성을 떠나 그려지고 설치된 방식은 임의 접속 가능한 중첩의 세계로 나아간다. 심상으로 바라볼 때 시점은 지나온 모든 시간 속에서 동시 재생되기 때문이다.
조기섭은 그림이 일으키는 환영 속으로 자연스럽게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공간 설치도 함께 구상하곤 한다. 그림의 바닥 면에 거울을 설치하여 그림의 빛과 색을 전시 공간으로 확장하는 것도 그러한 기법의 하나다.
이는 작가가 몰입했던 시공의 경험을 관객에게도 끼치기 위함일 것이다. 현장에서 수행소로 돌아온 이의 관상 풍경을 떠올려 본다. 생에의 집착을 벗어난 정신에는 무엇이 자리 잡는가? 공허를 향해 나아가는 무의미한 생인가, 만물의 생성과 소멸의 모든 가능성으로 채워진 지금이라는 순간인가. 《극점을 지나, 경계에 서서》에서 작가가 건네는 질문이다.
[글_우아름(미술비평) 일부 발췌]
※ 관람 시간은 매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매주 일요일은 휴관이며 목요일은 오후 3시에 입장 마감한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자세한 사항은 (010-9036-3551 권주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