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브란 퓔리(Dibran Fylli) 연대기(1) 프레카즈(PREKAZ), 용감한 자들의 유산
디브란 퓔리(Dibran Fylli) 연대기(1) 프레카즈(PREKAZ), 용감한 자들의 유산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4.09.12 02: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번역 강병철 박사

이번 장부터 코소보 전쟁영웅 연대기를 연재합니다. 디브란 퓔리(Dibran Fylli) 연대 1장을 시작으로 독자들과 만납니다.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디브란 퓔리(Dibran Fylli) 연대기(1) 프레카즈(PREKAZ), 용감한 자들의 유산

◆디브란 퓔리(Dibran Fylli) 연대기(1) 프레카즈(PREKAZ), 용감한 자들의 유산

-그는 살아있다-

1993년 4월 5일, 아뎀 야샤리(Adem Jashari)의 집에서 중요한 회의가 열렸다. 아뎀 야샤리의 무장 조직 구성원들 외에도 여러 정치 활동가들이 이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는 아뎀 야샤리의 군사 조직을 확장하고, 코소보에서 실행되는 작전들이 코소보 군의 이름으로 수행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회의에서 아뎀 야샤리는 코소보 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미 세르비아 경찰 병력에 대한 공격은 조정되고 있었으며, 이러한 조정, 확장, 무장 단체의 재구성을 통해 1993년에 코소보 해방군이 창설되었다.

드레니차(DRENICA): 알바니아 저항의 영토

이 용감한 자들의 지역은 고대에 클라포트니크(Klapotnik)로 알려져 있었다. 이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영광스러운 민족 역사와 드레니차의 이름이 떠오른다. 이 지역은 항상 적에게 악몽과 같은 존재였으며, 자유와 민족 독립을 위한 저항과 알바니아인의 인내와 동의어가 된 용감한 사람들의 보금자리였다.

국가 역사에서 드레니차는 무장 침략자에 맞서 저항한 알바니아 저항의 영토로 남아 있다. 코소보 전투(1389)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는 해방과 민족 독립을 위해 무기와 펜을 들고 싸운 사람들이 나왔다. 

코소보 전투에서 스켄데라이의 코필리치(Kopiliç of Skënderaj) 출신의 멜레쉬 니콜라스 코필리치(Melesh Nicholas Kopiliçi)는 술탄 무라드 1세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드레니차는 적에게 공포를 안겼다. 술탄조차 이스탄불에서 안정을 찾지 못했다.

발칸과 유럽 전체가 평온해졌지만, 드레니차에는 완전한 터키 지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1891년에 지배를 시도했을 때도 실패했다. 라우샤, 폴라츠, 프레카즈 사이에 있던 하미디예 사라이(Hamidije Saray)는 완전히 무너졌고, 카이메캄과 그의 모든 관료들은 하룻밤 만에 드레니차에서 추방되었다.

드레니차는 코소보 평야, 동쪽의 골레쉬와 큐차비차, 남쪽의 카랄레바 산맥, 북쪽의 모크나 산, 서쪽의 두카지니 사이에 있는 구릉지대를 포함한다. 드레니차는 100개 이상의 마을로 이루어진 집합적인 지리적 영토를 형성하며, 행정적으로는 여러 시 중심으로 분할되어 있으며 그 마을들은 스켄데라이, 글로고바츠, 클리나, 리프얀, 부슈트리, 말리셰바 등의 여러 자치구에 속해 있다. 세르비아 지배는 이 지역을 '말벌의 둥지'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

세르비아 지도자와 학자들의 사무실에서 알바니아인 추방과 절멸에 대한 여러 계획들이 논의되었을 때, 드레니차는 현지 인구(알바니아인)를 추방해야 할 가장 위험한 장소로 지정되었다. 알렉산더 왕 자신도 이 지역을 완전히 파괴할 것을 제안했다. 세르비아 정권은 드레니차의 마지막 마을을 불태우고, 마지막 아이를 죽이면 알바니아 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젬 갈리차(AZEM GALICA)의 맹세

1915년 봄, 아젬 갈리차는 자신의 전투 부대를 결성하기로 했다. 두 명의 형제와 주변 마을에서 모인 몇몇 남성들과 함께 갈리차에 모였고, 수백 년 된 나무(오크 묘석)의 그늘에서 식탁을 차리고 둘러앉았다. 

어머니 셰리페는 그녀가 상자 깊숙이 보관해 두었던 민족기를 꺼내어 잘 펼친 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전사들은 왼손을 가슴에 얹고 오른손을 깃발에 얹으며 만장일치로 맹세했다. “우리는 이 신성한 깃발에 맹세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이 땅의 자유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코소보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하고 다짐합니다.”

이 그룹은 나중에 "코소보 무장단체의 모체"로 알려졌으며, 즉시 군사 행동을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드레니차의 헌병들과 스파이들에게 두려운 날들이 시작되었다. 이 그룹은 13년 동안 70번 이상의 성공적인 전투를 벌이며 승리를 거두었다.

사령관 샤반 팔루자(SHABAN PALLUZHA)

1945년 드레니차 전쟁이 시작될 때, FBLÇBK(코소보 알바니아 해방군)의 최고 사령관 샤반 팔루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알바니아에서의 공산주의 지배, 슬라브족과의 동맹, 그리고 동방과의 결속은 사실상 최근 민족 역사에서 가장 큰 손실을 가져온 치명적인 사건 중 하나이다."

1945년 드레니차 전쟁의 특성에 대해 미국 언론은 명확히 밝혔다:

"용맹한 드레니차는 샤반 팔루자와 메흐메트 그라디차의 전사들 지휘 아래 유고슬라비아 군대와 공산주의 이념에 맞서 전쟁을 선포했다. 이는 알리 파샤의 지휘하에 야니나 파샬리크가 오스만 제국에 전쟁을 선포한 것과 같았다.“

드레니차(DRENICA): 자유의 기수

프리슈티나 동맹 시기부터 20세기 말까지, 거의 중단 없이 알바니아인들의 자유를 위한 봉기가 계속되었다. 알바니아인들은 때로는 적게, 때로는 많이 동원되어 외세 침략자들에 맞서 무장 저항을 벌였다. 

무장봉기는 주로 드레니차 고지대에서 시작되어 랩(Llap), 골락(Gollak), 길란(Gjilan), 자코바(Gjakova), 페야(Peja), 루고바(Rugova), 프리슈렌(Prizren), 그리고 나라의 많은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였다. 봉기의 선봉에는 하산 프리슈티나, 바이람 추리, 이사 볼레티니, 아흐메트 델리아 등 당시의 지도자들이 있었다.

드레니차는 해방자들의 보금자리였으며, 특히 애국자이자 투사의 상징인 아흐메트 델리아의 타워 하우스는 나라의 해방자들에게 항상 열려 있었다. 아흐메트와 그의 아들 무르셀은 많은 친구들과 무장 동지들과 함께 민족운동의 지도자들을 맞이하고, 그들의 집에서 침략자들에 대한 전반적인 민족 봉기에 대해 논의했다.

1912년, 아흐메트 델리아의 프레카즈 타워 하우스에서, 이전과 마찬가지로 드레니차의 모든 지도자들이 하산 프리슈티나와 만났다. 하산 프리슈티나는 터키 의회가 알바니아 의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이스마일 케말리가 전반적인 봉기를 지지하고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 회의에서 드레니차의 모든 지도자들은 하산 프리슈티나와 이스마일 케말리의 입장과 결정을 지지했다. 용맹한 프레카즈에서 열린 이 회의에서 드레니차의 용사들은 명예의 서약(베사)을 맹세하며 조국의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드레니차의 지도자들은 프레카즈에 있는 아흐메트 델리아의 집에서 모여 주니크 회의에 그들의 대표들을 보냈으며, 이 회의에는 코소보, 디브라, 슈코드라, 알바니아 남부 지역의 모든 지도자들이 모였다. 이 회의에서는 민족적 요구 사항을 담은 프로그램이 통과되었고, 알바니아 봉기는 전반적인 민족 봉기의 진정한 의미가 있게 되었다.

알바니아 반군의 지속적인 압박으로 인해 터키군은 알바니아 영토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 철수는 1912년 11월 28일 알바니아 독립 선언으로 이어졌다.

반면, 가장 부당한 방식으로, 그리고 모든 국제 원칙에 반하여, 유럽의 강대국들은 알바니아 국가의 주권과 영토적 통합을 침해하며,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같은 이웃 국가들에게 알바니아 영토를 나누고 병합할 "권리"를 인정했다. 유럽은 알바니아 영토를 나눴다. 알바니아인들은 무장 저항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한편, 슬라브족 침략자들은 저급한 확장 주의적 욕망에 자극받아 알바니아 주민들을 학살하고 공포에 빠뜨리며 저항을 억누르고 그들을 쫓아내기 위해 잔혹한 행위를 저질렀다. 이는 코소보의 인구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후속적인 인종 청소를 목표로 했다. 

그 뒤에는 코소보에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이주민들을 정착시키려는 세르비아 당국의 숨겨진 목적이 있었으며, 이러한 정책은 20세기 말까지 다양한 형태로 계속되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