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
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
뉴스N제주는 ‘이문자 칼럼’인 '내 인생의 푸른 혈서'를 게재합니다.
이문자 님은 시인이자 소설가로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으로 활발한 문학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류 작가입니다.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한국가곡작사가협회 회원,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문학상 수상 외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2024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예작가 선정되기도 했고 시집 <푸른혈서> 외 다수의 작품을 냈습니다.
앞으로 '이문자 칼럼'을 통해 자신이 쓴 시를 함께 감상하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일상을 통해 자신이 앞으로 가야할 길을 모색해 보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현재 개인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가 시라는 언어를 통해 내 마음의 힐링과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만들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뉴스N제주에 칼럼을 허락해 주신 이문자 시인님의 앞으로의 건승을 빌며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필독바랍니다. 이번주부터 '마스크를 좋아하세요? 나는 마스크를 좋아합니다.' 단편소설을 5회동안 연재합니다.[뉴스N제주 편집국]
마스크를 좋아하세요? 나는 마스크를 좋아합니다.
이문자
미나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의실은 웅성거린다. 시곗바늘이 9시 59분을 가리킨다. 복도에서 쿵 꽝 쿵 꽝 소리가 들린다. 이제 거친 숨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린다. 강의실 뒤쪽 출입구에서 콜록콜록 소리가 난다. 일제히 머리를 돌려 그쪽을 향한다. 젊은 남자의 눈도 그쪽을 위아래로 훑고 지나간다. 미나가 출입구에 서 있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얼굴이 붉다. 호흡은 여전히 거칠다. 거친 숨소리가 한참 들린다. 미나는 마스크 중앙을 길게 잡아당겼다가 놓는다. 앞에서 제임스가 위아래로 손짓하자 자리에 앉는다.
“안 오는 줄 알았잖아!”
“어제 동창들 모임이 있어서 한잔했더니 늦잠 잤어.”
“숨쉬기도 힘든데 마스크 좀 벗지?”
“괜찮아.”
앞에서 제임스가 탁자를 탁탁 친다. 허리를 펴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시간 간격을 두고 계속 들린다. 쩝쩝거리는 소리에 이마가 찡그려진다. 뒤를 돌아보다가 파란 티셔츠와 눈이 마주쳤다. 파란 티셔츠가 웃는다. 강사는 유럽 여행지에서 많이 쓰이는 영어 회화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시작되던 시기, 영어 회화 초급반 강좌를 등록했다. 동네 상가 2층에 작은 사무실을 영어 회화 학원으로 꾸며놓은 곳이다. 원장은 오전에 두 타임, 오후에 두 타임 강의한다. 학원에는 두 명의 강사가 출근한다. 유나는 새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영어 회화 강좌를 선택했다. 기초부터 열심히 해서 해외여행 때 유창한 회화를 해 보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삼 년이 넘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중간에 휴강도 많았다. 유나는 아직도 영어로 말하기보다 듣는 것이 편하다. 그래도 이제는 고급반이다. 어느 정도 보람도 생겼다.
오늘 배운 영어 회화를 한 명씩 일어나서 한 줄씩 읽는다. 유나 차례다.
“The bus stopped suddenly in the middle of the street.”
중간에 발음이 꼬인다. ‘버스가 거리 한복판에서 갑자기 멈춘다.’는 문장 하나가 왜 이렇게 힘든지. 반복해도 계속 꼬인다. 아직도 문장 하나가 이렇게 꼬이는데, 언제 연습해서 유창한 회화로 놀라게 해주나? 유나는 이런 생각이 들자 피식 웃는다.
다시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미나는 회화 발음이 꼬일 때마다 기침한다. 어색한 상황을 지나치기 위한 습관이라는 것을 이제는 고급반 회원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다. 사 년 전, 처음 초급반으로 만났을 때, 미나의 콜록거리는 소리는 모두에게 공포였다. 영어 회화 초급반을 시작할 때쯤 모두에게 생소한 호흡기 감염 질환이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조금 지나면 다른 때처럼 괜찮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이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지독한 호흡기 증상, 폐렴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뉴스에서 사망자 소식이 계속 흘러나왔다. 평소 질환에 시달리고 있던 노인의 사망 소식도 들렸다.
유나와 미나는 월, 수, 금 일주일에 세 번 오전 10시 강의를 듣는다. 제임스가 강의를 시작한 지는 일주일이 되었다. 강의실 칠판 위에 흰색 아날로그 시계가 정오 12시를 가리킨다. 회원들은 시계만 보고 있었던 건지, 재빠르게 정리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여름부터 반장을 맡은 긴 생머리 여자가 인사 한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유나와 미나도 따라서 인사를 한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뒤에 앉아 있던 파란 티셔츠는 언제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점심 약속들이 있는 걸까? 빠른 시간에 대부분 자리를 떠났다. 유나와 미나는 교재와 필기도구를 정리해서 가방에 넣는다. 앞에서 칠판 지우는 소리가 들린다. 제임스가 교실을 정리하고 있다. 유나와 미나는 교실 뒷정리를 돕는다. 교실 입구에 불투명 유리 벽으로 만들어 놓은 사무실에는 일인용 책상과 의자, 폭이 50cm 정도 되는 5단짜리 책꽂이와 노트북이 있다.
노트북 옆에는 작은 사진 액자가 세워져 있다. 사진 속에는 원장과 한 여자가 서 있다. 사진 앞에 사진을 보호하는 투명유리가 형광 불빛을 받아서, 사진 속 두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제 사진 속 두 남녀가 선명하게 보인다. 원장 옆의 여자는 부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어 보이고, 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이 들어 보인다. 여자는 몸매가 드러나는 붉은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다. 둘은 손을 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식사하러 먼저 나갑니다.”
“같이 가시지요?”
원장이 나가려 하자 제임스가 원장의 팔을 살짝 잡는다.
“새로 영어 회화 중급반에 등록하고 싶다는 친구가 보자고 해서, 점심 식사하러 먼저 나갑니다.”
원장이 제임스를 향해서 씩 웃으며 급하게 나간다. 제임스와 그들도 학원 문을 닫고 나온다. 디지털 키가 제대로 잠겼는지 손잡이를 잡고 밀어본다.
“제임스, 우리랑 점심 먹으러 같이 갈까? 미나도 시간 있지?”
“그래, 별일 없어. 같이 먹고 가자.”
미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제임스가 학원 강사로 오기 전부터 친구로 만났다. 그러다 보니 강의 시간 외에는 존댓말도 쓰지 않고, 서로 이름을 부른다. 영어 회화를 시작하며 만난 유나와 미나는 강의가 끝나고 별일이 없으면, 점심 식사와 커피를 함께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다.
(단편소설 《마스크를 좋아하세요? 나는 마스크를 좋아합니다.》 연재 5/1회, 다음에 이어서.)
<프로필>
이문자 소설가, 시인, 칼럼니스트
. 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
.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
. 뉴스N제주 칼럼니스트
. 국제PEN한국본부, 한국소설가협회, 종로미술협회 회원
. 한국예총 종로지부 기획위원, 한국가곡작사가협회 이사
.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문학상 수상 외
. 한국소설가협회 2024 신예작가
. 단편소설 《내미는 손》, 시집 《단단한 안개》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