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
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
뉴스N제주는 ‘이문자 칼럼’인 '내 인생의 푸른 혈서'를 게재합니다.
이문자 님은 시인이자 소설가로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으로 활발한 문학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류 작가입니다.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한국가곡작사가협회 회원,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문학상 수상 외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2024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예작가 선정되기도 했고 시집 <푸른혈서> 외 다수의 작품을 냈습니다.
앞으로 '이문자 칼럼'을 통해 자신이 쓴 시를 함께 감상하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일상을 통해 자신이 앞으로 가야할 길을 모색해 보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현재 개인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가 시라는 언어를 통해 내 마음의 힐링과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만들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뉴스N제주에 칼럼을 허락해 주신 이문자 시인님의 앞으로의 건승을 빌며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필독바랍니다. 이번주부터 5회동안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뉴스N제주 편집국]
내미는 손
이문자
그로부터 얼마 뒤, B01호 노인과 현관에서 마주쳤다.
“선생, 얘기 들었어? 2층 202호 그 애 엄마가 죽었다네. 에고, 불쌍해서 어쩌누. 엄마가 없으니 여기서 살 수가 없겠지. 할머니랑 이모네로 들어간다고 하더라고.”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저번에 B02호 도둑 들었던 거 기억나지? 글쎄, 도둑이 초등학교 남학생 두 명이라네. 고놈들이 뒷담을 넘어 그쪽 창문을 자주 훔쳐본 모양이야. 욕실 창문도 그쪽에 있잖아. 아무튼, 그러다 집이 빈 걸 알고 그 짓을 저지른 모양이야!”
나는 몸이 휘청거려서 벽을 잡았다.
나는 좌석을 두 줄로 앉아서 볼 수 있게 예매했다. 회원들과 아이들은 조용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숨을 죽인 가운데 영화 관람이 시작됐다. 빠른 화면의 변화와 음향 효과는 아이들의 마음을 끌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표정은 변화가 많았다. 웃었다가 찡그렸다가 놀랬다가, 표정만 보아도 즐겁다. 영화의 중간 부분이 되자 우주, 외계인, 로봇이 나왔다. 화면의 변화가 많은 영화라 한 여학생이 무섭다고 말했다. 눈을 가린 여학생은 소희였다. 소희는 내 옆자리 다음 칸에 앉아 있었다. 내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내가 손잡아 줄까?”
소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손을 소희가 앉아 있는 곳까지 뻗어서 잡아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한 듯 살짝 잡던 손을, 시간이 지날수록 꼭 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 나는 잡았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화면을 보면서 빛나는 맑은 눈동자, 나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 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 뻗은 손에 허리가 결린다. 그래도 놓을 수 없는 손. 2시간 44분의 관람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소희가 손을 빼고 화장실에 갔다. 이제 좀 편하게 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자세를 고쳐잡고 화면을 보다가 옆에 소리가 나서 돌아본다. 소희가 이번에는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에 응답이라도 하듯 다시 손을 잡아주었다. 그 체온을 느끼는 순간, 힘들다는 생각보다 따뜻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선생님.”
“왜?”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그래?”
“저 그때 작업실에서 선생님 지갑 훔치지 않았어요.”
“알고 있어. 그때 너는 내 지갑을 훔치지 않았어.”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잠시 착각했어. 내 지갑을 가방으로 옮겨 놓은걸, 깜박한 거야.”
“그래요?”
“만나면 사과하고 싶었지만, 네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바람에 그 기회를 놓쳤어. 미안해, 소희야.”
“지금이라도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네요.”
소희가 해맑게 웃는다.
집주인 여자가 정화조 비용을 받으러 왔다. 싱크대 문짝이 망가져서 고쳐 달라고 며칠 전에 요청했지만, 그 여자는 들은 척도 않았다.
“날씨 덥고 비 올 때는 창문 좀 열어놓고 지내요. 안 그러면 벽지에 곰팡이가 핀다니까.”
기분이 안 좋았다.
“알았어요.”
“뭐 불편한 건 없죠? 있으면 말해요.”
서랍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지불했다.
“없어요.”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아, 싱크대 문짝을 언제 고쳐 줄 생각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만 포기해 버렸다. 그 와중에 서랍에서 꺼낸 지갑이, 내 가방 속으로 들어갔던 모양이다.
지갑 찾는 것을 포기하고, 창문을 닫은 다음, 가스 밸브가 잘 잠겼는지 확인한다. 짐과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가려는데, 서랍 속에 있어야 할 빨간 지갑이 가방 속에서 얼굴을 살짝 내밀었다.
영화 관람이 끝났다. 아이들이 집으로 가면 저녁 시간이 될 것 같다. 늦어진 관계로 걱정이 되어, 바로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나는 악수만 하고 헤어지는 게 서운해서, 아이들을 한 명씩 보듬어 주었다. 처음에는 남학생들이 좀 어색해했지만, 잠시 후에는 모두가 웃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소희가 먼저 인사한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그래, 소희야. 우리 또 보자.”
나는 소희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며 웃었다.
아이들과 헤어져 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잠자리 떼가 시야에 들어왔다. 차를 멈추고,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본다. 작은 손 하나가, 비둘기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 단편소설, 내미는 손 연재 5/5회 끝.)
<프로필>
이문자 소설가, 시인, 칼럼니스트
. 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
.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
. 뉴스N제주 칼럼니스트
. 국제PEN한국본부, 한국소설가협회, 종로미술협회 회원
. 한국예총 종로지부 기획위원, 한국가곡작사가협회 이사
.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문학상 수상 외
. 한국소설가협회 2024 신예작가
. 단편소설 《내미는 손》, 시집 《단단한 안개》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