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자 칼럼](36)단편소설 《내미는 손》 - 연재 4
[이문자 칼럼](36)단편소설 《내미는 손》 - 연재 4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4.08.20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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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
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

뉴스N제주는 ‘이문자 칼럼’인 '내 인생의 푸른 혈서'를 게재합니다.
이문자 님은 시인이자 소설가로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으로 활발한 문학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류 작가입니다.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한국가곡작사가협회 회원,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문학상 수상 외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2024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예작가 선정되기도 했고 시집 <푸른혈서> 외 다수의 작품을 냈습니다.

앞으로 '이문자 칼럼'을 통해 자신이 쓴 시를 함께 감상하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일상을 통해 자신이 앞으로 가야할 길을 모색해 보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현재 개인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가 시라는 언어를 통해 내 마음의 힐링과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만들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뉴스N제주에 칼럼을 허락해 주신 이문자 시인님의 앞으로의 건승을 빌며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필독바랍니다. 이번주부터 5회동안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뉴스N제주 편집국]

이문자 작가
이문자 작가

 

내미는 손

이문자

아침부터 비가 계속 내린다. 작업실 입구로 들어서는 그 잠깐 사이에도 옷은 젖고, 신발은 진흙투성이다. 발이 닿는 곳마다 웅덩이라 걸을 때마다 짜증스럽다. 그런 상황이 요즘 나의 생활과 닮아 있는 것 같아, 저절로 한숨이 난다.

경찰관 두 명이 계단을 내려온다. B01호 노인도 경찰관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본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차가운 분위기가 맴돈다. 계단 위 102호 여자도 얼굴을 찡그리며, 부채질만 한다. B01호 노인이 의자에 앉으며 혀를 찬다.

  “글쎄 B02호에 도둑이 들었다네. 오래 살아도 생전 이런 일은 없었는데. 선생도 뭐 없어진 거 있는지 잘 살펴봐.”

  “에고, 무슨 그런 일이 다 있어요? 도둑은 잡혔어요?”

  “아직 못 잡았는데, 뒷골목에 작은 창문을 열고 들어와, 돼지 저금통과 금반지를 가져갔다나 봐. 작은 창문으로 들어온 걸 보면, 아무래도 애들 소행 같아. 그런데 이상한 건 CCTV가 있는 큰길에서 들어와야 B02호 창문이 나오는데, 경찰관이 CCTV에는 뒤쪽으로 간 사람이 없다는 거야. 그렇다면 도둑은 이 건물 안에 있다는 얘기 아니겠어.”

노인은 범인이 원룸에 사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으며, 매우 흥분한 상태로 무릎을 연달아 팍팍 친다. 그것도 창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작은 체구의 아이일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원룸에 범인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짚는 것이 아니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원룸에는 대개 아이들은 살지 않는다. 그리고 이 건물에 살고 있는 아이라면 소희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소희?

소희는 내가 작업실에 있는 것 같은 기미만 보이면 곧잘 찾아왔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미있게 조잘대기도 한다. 늦게까지 작업실에 있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소희는 집에서 옥수수, 고구마, 떡볶이, 튀김, 부침개 같은 것을 챙겨 왔다.

소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부모님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다가 이혼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희는 형제와 자매가 없다. 외할머니와 엄마와 살고 있다. 소희 엄마는 건설 현장 함바식당에 일을 나간다.

나는 소희를 보면, 어린 시절이 자주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는 사업을 크게 했다. 외국 수출까지 하던 회사는, 직원을 잘못 둬서 문을 닫고 말았다.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업 실패는 우리 집에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술독에 빠져 살았다. 시간이 갈수록 가족들은 힘든 생활을 견뎌야 했다.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 아버지 대신 생계를 위해 일을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식당 일을 하다가, 나중에는 동네에 잘 아는 부동산에서 일했다. 그것이 그래도 적성에 맞는지, 생활을 유지하며 돈을 모았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어머니는 작은 부동산을 직접 운영했다.

어느 날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소희가 스케치북을 가져와서 보여주었다. 스케치북에는 소희가 쓰고 그린 시화가 들어 있었다.  

  “선생님, 제가 쓰고 그린 시화예요.”

  “제법인걸! 이렇게 따뜻한 그림은 오랜만에 보는구나.”

엄마의 따뜻한 사랑이 느껴지는 내용의 시와 그림이다.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작품이다.

소희는 저녁을 먹고 다시 오겠다며 집으로 올라갔다. 나도 잠시 후 저녁 식사 거리를 사러 나가려고 일어섰다. 책상 위 핸드폰을 챙기고, 지갑을 꺼내려고 싱크대 서랍을 열었다. 서랍 속에 있어야 할 지갑이 없었다. 내가 작업실에 온 뒤로 소희 외에는 들어온 사람이 없는데? 설마 아니겠지. 아니라고 생각하는 한구석에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의혹이 나를 자꾸 흔들었다. 얼마 전에 B02호 도둑이 든 일도 떠오른다. 싱크대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찾았다.

  “뭘 그렇게 찾아? 뭘 잃어버린 거야?”

  여름이라 현관문을 열어 두었더니,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B01호 노인이 궁금했는지 들여다본다.

  “지갑을 여기 서랍에다 넣어 둔 거 같은데, 보이지 않아서 찾고 있어요.”

  “아까 보니까, 2층에 사는 소희가 왔다 가는 것 같던데?”

  노인의 말을 들으며, 움직임이 느껴져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소희가 뒤돌아서서 도망치듯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날은 애들 학원이 쉬는 날이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들이 학교에서 바로 온다는 말을 듣고, 남편도 퇴근하고 바로 오겠다고 대답한다. 작업실을 서둘러 나서는데, 현관 앞에 B01호 노인이 앉아 있다.

  “집에 가는 거야? 오늘은 일찍 가네. 2층에 소희가 요즘 많이 늦게 들어온다고, 아이 할머니와 엄마가 걱정하던데.”

  비가 많이 내린다.

  ‘무슨 일이 있나? 며칠째 소희가 통 안 보이고, 늦게 집에 들어온다는 얘기도 들리고.’

  작업실 물건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소희를 떠올린다. 요즘 학교에서도 통 볼 수가 없고, 작업실에도 놀러 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소희네 가봐야겠어!’

  신고 온 신발이 진흙투성이라 슬리퍼를 신고 나섰다. 슬리퍼를 신은 것이 신경 쓰였지만, 진흙투성이 신발보다는 괜찮다고 생각하며 계단을 오른다. 202호 소희네 집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여러 번 부르고 잠시 기다리니,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누구신가요?”

  “밑에 층에 사는 사람인데요. 여기가 소희 학생 집 맞나요?”

  현관문이 열린다.

  “맞는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안에서 낯익은 얼굴의 노인이 나왔다. 노인도 나를 알아보는 눈치다. 노인의 표정이 어둡다. 소희가 작업실에 드나들며 음식도 날랐으니, 집에서 내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소희가 요즘 놀러 오지도 않고, 학교에서도 안 보여서요.”

  “소희 엄마가 일하던 곳에서 좀 크게 다쳤어요. 그래서 소희가 이모들과 병원에 가 있어요.”

노인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한다.

  “어머, 그러셨군요.”

이야기 중에 소희 할머니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물어보지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앞이 점점 뿌예지면서,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단편소설 《내미는 손》 연재 5/4회, 다음에 이어서)

<프로필>

이문자  소설가, 시인, 칼럼니스트
. 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
.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  
. 뉴스N제주 칼럼니스트
. 국제PEN한국본부, 한국소설가협회, 종로미술협회 회원
. 한국예총 종로지부 기획위원, 한국가곡작사가협회 이사
.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문학상 수상 외
. 한국소설가협회 2024 신예작가
. 단편소설 《내미는 손》, 시집 《단단한 안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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