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자 칼럼](35)단편소설 《내미는 손》 - 연재 3
[이문자 칼럼](35)단편소설 《내미는 손》 - 연재 3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4.08.18 0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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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
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

뉴스N제주는 ‘이문자 칼럼’인 '내 인생의 푸른 혈서'를 게재합니다.
이문자 님은 시인이자 소설가로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으로 활발한 문학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류 작가입니다.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한국가곡작사가협회 회원,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문학상 수상 외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2024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예작가 선정되기도 했고 시집 <푸른혈서> 외 다수의 작품을 냈습니다.

앞으로 '이문자 칼럼'을 통해 자신이 쓴 시를 함께 감상하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일상을 통해 자신이 앞으로 가야할 길을 모색해 보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현재 개인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가 시라는 언어를 통해 내 마음의 힐링과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만들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뉴스N제주에 칼럼을 허락해 주신 이문자 시인님의 앞으로의 건승을 빌며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필독바랍니다. 이번주부터 5회동안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뉴스N제주 편집국]

이문자 작가
이문자 작가

 

내미는 손 / 이문자

밖에서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선생님, 저 소희인데요. 놀러 왔어요.”

  밝은 목소리에 문을 열어주니, 소희가 찐 고구마를 가지고 왔다. 우리는 고구마를 먹으며 책을 읽었다. 소희는 내가 가지고 있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었다. 그 책을 정말 좋아했다. 토요일 아침에 내가 작업실에 와 있는 것을 알고, 또 놀러 왔다.

  “선생님, 제가 아침에 어린 왕자한테 편지를 썼어요.”

  쑥스러운지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린다.

  “그래? 그럼 한 번 읽어볼까.”

우리 정말 오랜만이다. 항상 그랬듯이 문득 네가 생각나서, 이른 아침부터 말을 걸어 본다.

나는 너를 찾을 때면 어김없이 ‘길들여진다’는 말을 먼저 떠올리곤 해. 그 말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말도 없거든. 너의 작은 별에서 매일 지겹도록 보았을, 한 송이 장미꽃을 찾아 헤매니 말이다. 그런 걸 보면 매일 익숙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우리는 느끼며 살아야 해. 너는 실망했었지. 너의 소중한 장미가 내가 사는 이 별에선 흔하디흔한 장미라는 게, 아마도 슬프고 화가 났을 거야. 너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오늘도 언제나처럼 조금 벗어나고 싶어질 때면, 너에게 어김없이 말을 걸지. 너는 정치도 이념도 철학도 말하지 않아. 오직 소중한 것에 대해서만 얘기하지. 아무런 계산 없이 그냥 읽어 나가다 보면, 내게 주어진 것들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 모든 것들이 소중해져.

요즘처럼 일상이 지겹게 느껴질 때면, 네가 있는 책장을 열게 되지. 자, 그럼 내 이야기는 그만하고, 지금부터 네가 사는 세상으로 우리 한 번 떠나볼까? 언제나처럼 우유 한 잔으로 시작하자. 창밖을 보니 오늘 날씨가 선선하니 좋은 거 같아. 참, 저녁에는 비 소식도 있더라. 우산을 챙겨도 좋을 거 같아. 지저귀는 새소리도 아침을 열기에 너무도 정겹다. 지금부터는 네가 있는 곳에 들어간다. 자, 첫 장을 열어 보자고.

소파에 앉아서 리모컨을 누르며, TV 채널을 바꿔가며 보고 있다. 밖은 어둠이 짙어진다. 학원에서 돌아온 딸과 아들이 현관을 들어선다. 여느 날과 다르게, 신발을 대충 벗어놓고 들어온다. 낮에 사 온 치즈버거를 반으로 나눠 주며, 탄산음료 대신 따뜻한 보이차를 준비한다. 온종일 에어컨 바람 밑에서 찬 음료만 마셨을 것이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힘들었을 것을 생각해서 따뜻한 차로 준비한다. 버거를 먹고, 씻고 나온 딸과 아들은 피곤하다며,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책상 앞에 앉아 보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한다. 남편은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온다. 취해서 정신이 없는지 대충 씻고 나와서, 잠이 든다. 옆에서 코를 심하게 곤다. 밤새 뒤척이다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아파트 놀이터에서 소희가 자꾸 떠오른다. 학교 선배인지 친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남학생 세 명과 여학생 한 명이 같이 있었다. 소희와 그 친구들은 험악한 얼굴로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노려보았다. 소희가 그 여자아이를 밀쳤고, 아이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소희가 B01호 노인에게 보인 행동과 놀이터에서 아이에게 저지른 언동이 예사롭지 않았다.

식사를 먼저 끝낸 아이들은 오락실을 드나들었다. 여학생보다 남학생들이 오락에 더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여학생 서너 명은 오락실 입구에 놓여 있는 인형 뽑기에 관심을 보였다. 유행하는 초록색 인형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겼지만, 놓치고 말았다. 영화 상영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끝낼 기미가 없다. 인형을 놓친 여자아이는 아쉬운 얼굴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끝내게 하고 데리고 나왔다.

  영화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였다. 상영 시간이 세 시간 가까이 걸리는 긴 영화다. 나는 영화관으로 이동해 관람을 위하여 화장실도 다녀오고, 매점에서 아이들을 위한 팝콘과 음료수도 샀다. 옆에 있던 소희가 음료수를 들어준다.

  상영 시간 전, 20분의 여유가 생겼다.

  “얘들아, 우리 시간 있을 때 단체 사진 찍고 들어가자.”

  인솔자가 짧은 시간 빠르게 움직인다.

  옆에 있는 젊은 커플에게 부탁한다. 인상 좋은 청년은 기분 좋게 응한다. 밝은 매점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

  “이제 찍을게요. 웃으세요. 하나, 둘.”

  청년이 웃으며 외친다. 찰깍 소리와 동시에 플래시가 터진다.

  “감사합니다.”

  “잠깐만! 다시 한번 더 찍어 드릴게요. 하나, 둘.”  

찰깍 소리가 나며 플래시가 다시 한번 터진다. 두 장의 사진에는 활짝 웃고 있는 모습도 있고, 어색한 듯 고개를 살짝 돌린 아이도 있다. 움직여서 사진이 이상하게 나왔다고, 속상해하는 여자아이도 있다. 그것도 자연스러워서 좋은 추억이 된다고, 나는 위로해 주었다.

(단편소설 《내미는 손》 연재 5/3회, 다음에 이어서.)

<프로필>

이문자  소설가, 시인, 칼럼니스트
. 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
.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  
. 뉴스N제주 칼럼니스트
. 국제PEN한국본부, 한국소설가협회, 종로미술협회 회원
. 한국예총 종로지부 기획위원, 한국가곡작사가협회 이사
.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문학상 수상 외
. 한국소설가협회 2024 신예작가
. 단편소설 《내미는 손》, 시집 《단단한 안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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