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
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
뉴스N제주는 ‘이문자 칼럼’인 '내 인생의 푸른 혈서'를 게재합니다.
이문자 님은 시인이자 소설가로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으로 활발한 문학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류 작가입니다.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한국가곡작사가협회 회원,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문학상 수상 외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2024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예작가 선정되기도 했고 시집 <푸른혈서> 외 다수의 작품을 냈습니다.
앞으로 '이문자 칼럼'을 통해 자신이 쓴 시를 함께 감상하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일상을 통해 자신이 앞으로 가야할 길을 모색해 보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현재 개인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가 시라는 언어를 통해 내 마음의 힐링과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만들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뉴스N제주에 칼럼을 허락해 주신 이문자 시인님의 앞으로의 건승을 빌며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필독바랍니다. 이번주부터 5회동안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뉴스N제주 편집국]
내미는 손
이문자
B01호 노인이 낡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운전을 어쩜 그렇게 잘해?”
“감사합니다.”
“참말 멋있어.”
“더운데 왜 나와 계세요?”
“누구 기다려.”
“식사는 하셨어요?”
물음에 노인은 고개만 끄덕인다. 작업실이 있는 1층은 우편함이 있는 곳에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노인에게 가볍게 인사한다. 작업실 105호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서는데, 2층에서 뛰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계단을 내려오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보니, 내가 방과 후 수업을 맡은 반 아이다. 여자아이가 먼저 알아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약간 당황해하는 얼굴이다.
“그래, 소희야. 여기 사니?”
어제 아침에 일어났던 일이 생각났다. 수업이 없어서 아침부터 작업실에 와 있었는데, 2층에서 여자아이가 짜증을 내며 울먹이던 그 목소리. 생각해 보니 소희 목소리였다.
“선생님도 여기 사세요?”
아이는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사는 건 아니고, 선생님 작업실이 여기 있어서, 시간이 나면 거의 매일 와.”
작업실 문을 열고 있는데, 소희가 궁금한지 들여다본다.
“와, 그림이 정말 많네요.”
며칠 전, B01호 노인이 2층에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산다고 말했다. 버릇도 없고, 동네 안 좋은 남자애들과 어울려서 질이 안 좋다고 흉을 보았다. 그렇다면 그 아이가 소희?
“선생님.”
“응?”
“저 그림 구경하고 싶어요.”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들어와.”
작업실에 들어온 소희는 벽에 걸린 시화를 신기한 듯 읽어본다. 한가운데 나무 이젤 위에는 유화 그림이 있다. 그림 속에 손으로 머리를 받쳐 놓고 기대 있는 여인은, 무엇인가 생각에 잠긴 듯 보인다.
“소희야, 햄버거 좋아하니? 선생님이 치즈버거 사 왔는데 먹을래?”
아이들 간식으로 준비한 치즈버거 한 개를 소희 앞으로 내밀었다.
“저 치즈버거 좋아해요.”
소희가 웃으며 치즈버거를 받는다. 버거 포장지를 벗기는데, 양배추와 당근 채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물티슈로 방바닥을 훔치는 모습을 보며, 냉장고에서 콜라 캔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불고기 버거를 먹고, 이젤 위 인물화에 유화 물감을 더 칠한다. 신기하고 궁금한 게 많은지, 소희가 계속 질문한다. 정신이 없기도 하고, 덥기도 해서 소희에게 아이스크림 먹으러 나가자고 제의했다. 소희는 허락을 받기 위하여 위층 집으로 올라갔다.
외출하기 위하여 가스 밸브가 잠겼는지, 전기는 안전한 상태인지 확인한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데, 건물 입구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내려다보니 B01호 노인과 낯익은 노인이 언성을 높이고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말 함부로 하지 말란 말이야!”
“이 노인네가 내가 뭘 어쨌다고 이 난리야?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두 노인이 화를 내며, 금방이라도 머리끄덩이를 잡을 모양새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한테 그러지 마세요!”
위층에서 내려오던 소희가 B01호 노인을 무섭게 노려본다.
“어린 것이 제 할미를 닮아서 버릇이 없네.”
B01호 노인이 씩씩거리며, 지하 계단을 내려가다가 휘청거린다. 소희 할머니도 얼굴이 붉어진다. 나는 소희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른한테 버릇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할머니, 괜찮아?”
“별일 아니야. 넌, 신경 쓰지 마!”
소희는 흥분한 할머니의 팔짱을 끼고, 도로 위층으로 올라갔다가 조금 뒤에 다시 내려왔다.
소희와 골목을 빠져나와 길 건너, 24시 편의점에서 바닐라 아이스크림 두 개를 샀다. 편의점 앞에는 파라솔과 둥근 탁자와 네 개의 의자가 있다. 가로수가 울창하다. 비둘기들이 왔다 갔다 분주하게 걸어 다닌다. 소희와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편의점 앞에서 무더운 오후 시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유모차를 몰며 지나가는 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오가는 차를 바라보며, 요즘 인기 있는 차종과 색깔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흰색 승용차가 지나간 후, 비둘기는 주검이 되어 도로에 누워 있다. 그 사건에 충격을 받았는지 다른 비둘기들이 사체를 맴돌고 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한 마리씩 떠난다. 마지막 한 마리가 오래도록 주검을 지킨다. 그러나 결국 그 한 마리조차, 더 이상 그 자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
비둘기의 사체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죽은 비둘기를 둘러싸고 무엇인가 의논하는 것 같다. 잠시 후에 아이들은 비둘기를 나무 막대기로 비닐봉지에 담아서 어디론가 몰려갔다.
사고는 한순간이다.
“선생님, 비둘기가 너무 불쌍해요.”
옆에서 소희가 울어서 엉망인 얼굴이다.
“이제 어두워지는데 그만 들어가자.”
작업실에 도착한 소희는 좀 진정하나 싶더니, 계속 울먹인다. 하는 수없이 요즘 인기 있는 걸 그룹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소희는 가수들의 옷차림과 외모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걸 그룹 이야기로 기분이 나아진 소희를 집으로 올려보냈다. 어느새 이젤 위 그림 속에는 비둘기만 가득하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질러진 작업실 안을 대충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단편소설 《내미는 손》 연재 5/2회, 다음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