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자 칼럼](19)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읽고
[이문자 칼럼](19)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읽고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4.06.20 0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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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
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

뉴스N제주는 ‘이문자 칼럼’인 '내 인생의 푸른 혈서'를 게재합니다.
이문자 님은 시인이자 소설가로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으로 활발한 문학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류 작가입니다.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한국가곡작사가협회 회원,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문학상 수상 외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2024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예작가 선정되기도 했고 시집 <푸른혈서> 외 다수의 작품을 냈습니다.

앞으로 '이문자 칼럼'을 통해 자신이 쓴 시를 함께 감상하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일상을 통해 자신이 앞으로 가야할 길을 모색해 보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현재 개인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가 시라는 언어를 통해 내 마음의 힐링과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만들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뉴스N제주에 칼럼을 허락해 주신 이문자 시인님의 앞으로의 건승을 빌며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필독바랍니다.[뉴스N제주 편집국]

이문자 시인
이문자 시인

◇너는 돌아올 거야

- 헤르타 뮐러 《숨그네》

이문자

이, 책을 읽으면서 세계의 역사 속에 내가 모르는 아픔 진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나치 독일에 대해서만 생각했었지, 루마니아에 거주하고 있는 독일계 힘없는 소수민족의 아픔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몇 년 전 캄보디아 여행이 생각났다. 가이드에게 들었던 킬링필드가 떠올랐다. 지식인과 부유층을 위주로 양민 200만 명을 학살한 아픈 역사. 우리에게도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가 있지 않은가.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도 뒤돌아보면, 우리가 서로의 아픈 역사를 너무도 모르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작가 헤르타 뮐러는 1953년 8월 17일 루마니아 바나트 지방의 나츠키도르프에서 태어났다. 보수적인 독일계 소수민족 가정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성장했다. 루마니아 독일계 소수민족이었던 헤르타 뮐러의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의 강제수용소에서 오 년간 노역했다.

1982년 첫 작품 저지대에는 이런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자세히 묘사되었다. 저지대는 유럽, 독일 문단과 정치권의 이목을 끌었고, 루마니아 정부는 저지대를 금서 조치했다. 헤르타 뮐러는 남편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1987년 독일로 망명했다.

숨그네의 처음은 ‘내가 가진 것은 모두 가지고 간다.’로 시작된다.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체 레오는, 축음기 상자로 만든 돼지가죽 트렁크 속을 채워 떠나고 싶어 한다.

떠나는 곳에서 몹시 나쁜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레오는 뒹구는 돌에도 눈이 달려 있을 만큼 작은 도시가 싫었다. 그런 비밀이 없는 소도시를 떠나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주인공 레오는 랑데부라는 이유로 가족이나 주위의 시선이 차갑게 느껴졌다. 그것을 금지된 무엇이라고 표현한다. 레오의 금지된 무엇은 어디에서든 일어났다. 그것은 레오의 혼돈 무늬이며, 어머니의 얼굴에 나타날 혐오의 무늬라고 말한다.

그런 혐오의 무늬를 느낀 레오는 랑데부가 있는 공원에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고 결심하지만, 이틀을 못 넘기고 다시 공원을 찾는다. 그 후로 레오의 랑데부는 장소를 옮겨갔고, 상대를 바꿔갔다. 이때만 해도 랑데부는 무조건 감옥행이었다. 잡히면 적어도 오 년 형이었다. 레오는 그런 자신을 알 것 같은 모든 것에서 떠나고 싶었다.

레오는 루마니아에 사는 독일계 태생 소수민족 중 한 명이었다. 독일인들은 전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주변의 강대국 들은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였다. 그 외 약소국들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

루마니아는 생존을 위해 정세에 따라 독일에 기울어졌다가, 다시 러시아로 기울어진다. 러시아는 루마니아에 사는 독일인들 중 17세에서 45세 사이의 독일인들을 빠짐없이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레오도 그중의 한 명인 민간인이었다. 민간인이었던 레오는 17세였던 1945년 1월에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5년 만에 돌아왔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저항할 틈도 없이 수용소로 보내졌다.

수용소 생활 내내 배고픔은 항상 따라다녔다. 그들은 수용소에 오기 전에 추위에 대비할 준비 외에는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른 채 들어왔다. 주위에서 주는 대로 받아왔던 물건들이 먹을 것과 바꿀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시멘트는 절도범이었다. 그들이 시멘트를 훔친 게 아니라 시멘트가 그들을 훔쳐 갔다. 시멘트는 계속 줄어들었다.

참전 경험이라곤 전혀 없는 수용소 사람들은 러시아인들에게는 히틀러가 저지른 범죄에 책임이 있는 독일인들이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수용소 대신 러시아인 마을로 구걸을 나갔다. 수용소에 늦게 들어가는 것은 좋았지만, 너무 늦게 들어가면 수프는 한 방울도 남지 않아 굶주렸다.

손수건은 내 운명이라는 믿음 때문에, 흰색 아마포 손수건은 사용한 적이 없었다. 운명을 포기하면 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할머니의 작별 인사가 손수건에 담겨 있음을, 레오는 믿고 있었다.

레오는 엽서 한 장을 받았다. 아이의 사진이 박음질 된 사진 아래 로베르트, 1947년 4월 17일 출생이라고, 어머니의 손 글씨가 쓰여있다. 레오는 무릎을 꿇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낀다. 내 생사를 모르는 부모님이 내 대리 형제를 만들었다고. 너는 거기서 죽어도 된다고. 집에 입 하나 준 셈 치고 있다고. 레오는 흐느끼며 끝없이 생각의 늪으로 빠져든다.

레오는 1950년 1월 초, 수용소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다. 레오는 몇 달째 발로는 집에 돌아와 있었지만, 무엇을 보고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집에, 묻는 사람도 없었다. 레오는 꼬박 일 년 동안 상자에 못 박는 일만 했다.

한 인간의 고통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레오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가족으로 함께할 수 없게 바꾸어 놓았다. 그는 그렇게 힘들었던 수용소와 사람들을 떠 올리며,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레오는 돌아와 에마라는 여자와 결혼도 하지만, 결국은 헤어져서 외로운 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한 인간이 살면서 이겨내기 힘든 고통의 시간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숨그네를 통해서 다시 한번 느꼈다. 레오의 가족들도 레오의 아픔을 함께 감싸주고, 아파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도 표현이 쉽지 않았던 것은, 그런 고통의 시간을 한마디의 말로 위로하기에는 레오는 너무 어렸고, 오 년이란 시간은 절대 짧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 오 년이란 시간은, 한 인간의 남은 인생을 고통으로 남겼다. 행복이란 단어가 사치처럼 다가와 아픈 시간이다.

<프로필>

이문자 소설가, 시인
. 뉴스N제주 칼럼니스트, 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
. 국제PEN한국본부, 한국소설가협회, 종로미술협회 회원
.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문학상 수상 외
. 단편소설 《내미는 손》, 시집 《단단한 안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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