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자 칼럼](10)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이문자 칼럼](10)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4.05.14 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
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

뉴스N제주는 ‘이문자 칼럼’인 '내 인생의 푸른 혈서'를 게재합니다.
이문자 님은 시인이자 소설가로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으로 활발한 문학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류 작가입니다.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한국가곡작사가협회 회원,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문학상 수상 외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2024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예작가 선정되기도 했고 시집 <푸른혈서> 외 다수의 작품을 냈습니다.

앞으로 '이문자 칼럼'을 통해 자신이 쓴 시를 함께 감상하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일상을 통해 자신이 앞으로 가야할 길을 모색해 보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현재 개인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가 시라는 언어를 통해 내 마음의 힐링과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만들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뉴스N제주에 칼럼을 허락해 주신 이문자 시인님의 앞으로의 건승을 빌며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필독바랍니다.[뉴스N제주 편집국]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하여
-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이문자 시인
이문자 시인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시대를 살았던 우리에게는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문제다.

조지 오웰의 작품 《동물농장》을 ‘서로다독독서토론’ 모임에서 과제로 읽으면서 이 작가에 대하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선택해서 읽게 된 작품이 《1984》였다. 《1984》는 조지 오웰의 마지막 작품이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일깨워 준 작품이다.

오웰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에 소련의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현대적인 우화 《동물농장》을 발표하였다. 동물농장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동물농장을 읽으며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우화를 통하여 자유의 신화로 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에 끌리게 되었다.

조지 오웰이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한 기간은 첫 작품 《파리와 런던 안팎에서》를 발표한 1933년부터 마지막 작품인 《1984》를 출간한 1949년까지 십칠 년이라고 한다. 이 짧은 기간에 세계적 걸작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1945년 동물농장을 출간하면서 작가로서의 명성과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기 시작하지만, 행복을 느끼기도 전에 그해 사랑하는 아내를 잃는 슬픔을 겪게 된다. 오웰은 지병인 폐결핵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

 전체주의를 비판한 《1984》를 1949년에 출간하고, 이듬해 1950년 나이 47세에 갑작스러운 지병의 악화로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다.

조지 오웰의 작품 《1984》는 극단적 전체주의 사회인 오세아니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곳의 전체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허구의 인물 빅 브라더를 내세워서 독재 권력을 극대화하였다.

오웰이 작가로 활동한 1930년대와 1940년대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인류 전체가 이데올로기 속에서 피 흘리던 비극의 시대였다.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즘,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 소련 스탈린의 스탈린주의, 일본의 군국주의 등 전체주의의 양상은 극에 달했고, 전 세계가 공포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는 철저히 말살 되어 갔고, 잔인한 살상이 계속되었다. 

독재 권력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하였다. 당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당원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과거를 끊임없이 조작하고, 영혼까지 철저히 감시했다.

존재조차 알 수 없는 반역자 골드스타인을 내세워 당원들의 증오심을 일으키고, 인간의 기본 욕구인 성욕까지 당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철저히 감시했다. 이러한 인간의 기본 생활이 무시되고, 감시당하는 데 반발을 느낀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저항하기 시작했다. 지하 단체인 ‘형제단’에 가입하고, 오랫동안 마음이 끌려서 믿었던 오브라이언에 의해 잡혀가게 된다.

당시 비평가들은 《1984》라는 소설을 소련의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 보았다. 1984를 통해 단순히 암울한 미래상을 보았던 것은 아니다. 전체주의 지배 체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파멸해 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일깨워 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오웰은 이런 세상을 저항하였고 그 폭력성을 낱낱이 고발하였으며,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오웰은 자신이 사회주의자라는 것을 자처했지만, 사회주의의 폐습과 모순에는 적극적으로 대항하였다. 그가 바라던 사회주의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영원한 순수한 사회주의였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승리 맨션에 산다. 승리 맨션의 엘리베이터는 가동되지 않는다. 아니, 이 사회의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가동되지 않는다. 복도를 지나다 보면 벽에 컬러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 포스터에는 커다란 눈을 가진 잘생긴 남자가 지켜보고 있다. 

윈스턴은 오른쪽 발목의 정맥류성 궤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사는 7층까지 올라가다가 몇 차례는 쉬면서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 층계를 지날 때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 벽에 붙은 커다란 얼굴의 포스터가 그를 노려본다. 그 포스터는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눈동자가 따라 움직이도록 고안된 포스터이다.

포스터 아래에는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당원들은 이렇게 모든 순간을 감시당한다.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텔레스크린’이라는 금속판에 의하여 감시당한다. ‘텔레스크린’은 마음대로 끌 수 없게 되어있다. 

이렇게 당원들은 권력에 의해서 철저히 매 순간을 감시당하고, 개인의 생각과 사랑마저도 용납되지 않는다. 한 인간의 삶을 철저히 지배하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인간의 자유를 용납하지 않는다.

빅 브라더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권력의 지속을 위해 당원들을 감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이다. 오늘날 ‘빅 브라더’는 관리 권력의 사회 통제와 그런 사회의 분위기를 말하기도 한다.

진리부는 지상에 삼천 개의 방이 있고, 지하에도 그만한 수의 방이 있다. 진리부는 신어를 만드는 일과 역사를 날조하는 일을 한다. 거기에서 윈스턴은 일을 한다. 진리부의 당원은 일을 하는 동안과 모든 순간을 감시당한다.

진리부의 흰 건물의 전면에는 당의 세 가지 슬로건이 우아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 슬로건으로, 이곳이 얼마나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억압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윈스턴은 진리부에서 과거를 지우고, 고치는 일을 하면서 통치 체제를 강화하는 일을 하고 있다. 

주인공 윈스턴은 빈곤했지만, 인간적인 삶을 살았던 엄마와 동생과의 과거를 기억하고 싶어 한다. 윈스턴은 당이 주장하는 과거의 시간과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 일치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런 주인공은 고물상에서 몰래 사 온 일기장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다. 일기는 당이 철저히 금지하는 것이다.

 일기를 쓰면서도 ‘누구를 위해 이 일기를 쓰는가?’라는 의문을 가진다. 문득, 그는 ‘이중사고(doublethink)’라는 신어가 떠오른다. 실재하는 현실과 강제로 만들어진 현실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르는 철저히 만들어진 내면.

윈스턴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노인을 통해서 과거의 기억을 찾으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윈스턴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뭉치면 거대 권력인 당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윈스턴은 진리부의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줄리아와 사랑에 빠진다. 둘은 어렵게 사랑을 이어가지만, 모든 것은 자유롭지 못했다.

윈스턴은 몇 번 마주쳤던 오브라이언을 믿고 그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모든 고통을 감수할 것을 약속하고, 골드스타인을 따르고 ‘형제단’에 들어간다. 그 선택은 윈스턴을 파멸시키고 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브라이언은 사상경찰로 7년 전부터 윈스턴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윈스턴이 과거를 알고 싶어 하고, 전체주의와 당에 의문을 가지며 믿지 못한다는 것도, 일기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줄리아와 자유연애에 빠져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1984》를 읽으면서 계속 다른 반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줄리아가 사상경찰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오랜 시간 믿음을 주는 눈길로 믿게 되었던, 오브라이언의 배신은 윈스턴을 파괴하고 만다.

사상경찰에 잡혀 온 남자 중에 자신의 아이에게 고발당해서 잡혀 온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잠자다가 잠꼬대로 불손한 말을 했다는 죄로 모진 고문을 당한다. 어쩌면 그의 마지막은 죽음으로 속죄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 남자는 “내가 애를 잘 키웠지?” 라는 말을 한다. 

당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기본적인 생각도 지배한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이 흐려지게 한다. 전체주의 속에서는 기본적인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