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강수니 신작 시집. 월간『시문학』2017년 10월호. 27쪽, 뼈의 지도
뼈의 지도
강수니
한숨 한 올 새지 않게 다져둔 어머니의 지붕을
포크레인이 걷어내자 겹겹의 어둠을 열고
대들보와 척추와 갈비뼈 서까래가 나란히 뉘어 있다
빌려 쓴 것들을 모두 다 돌려주고 땅속에 들었어도
소멸 못한 미련뼈 몇 점이 이승의 흔적을 삭히고 있다
피난 때 골절됐던 정강이뼈 어긋나게 붙은 채이고
의치 값 아깝다고 그대로 살았던 어금니자리 그대로 비어있다
저 다리로 저승 그 먼 곳을 아직도 걸어가고 있나보다
심장이 있던 자리 가득 매운 흙빛이 유독 검다
순환을 멈추고도 자식걱정 까맣게 애태운 흔적이다
반쯤은 흙이 된 어머니의 손을 움켜잡고 작별인사를 하는데
염주알 같은 손뼈들이 내 손안에서 달그락 거린다
뼈의 지도대로 한지 한 장에 차곡히 접히는 저승
팔 남매의 거름으로 살다 간 그녀가
또 한 나무의 거름이 되기 위해
뼛가루로 수목장 가는 길목
흙집에 들던 날 차지게 울어주던 그때 그 곡비가
앞산까지 따라와 뻐꾹뻐꾹 울어주고 있다.
『이장(移葬), 유골(遺骨)로 반추하는 어머니의 지도』
‘예술작품에서 창작동기가 되는 중심제재의 원천은 어머니다.’라고 한다면 과한 말일까? 모태에서 적신으로 나와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한시도 잊을 수 없는 존재인 어머니, 그러나 같은 날, 같은 시각, 함께 무덤으로 갈 수 없기에 어머니와 한 번은 영원한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매장문화가 이어져온 한반도에는 이장(移葬)이라는 장례문화가 있다. 이 경우 부모와 자녀는 또 다른 별리를 겪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강수니 시인의 시를 통해 어머니의 분골과 이별하는 생경한 토포스(topos) 속으로 들어가 본다.
영원을 사모하는 유전인자를 지닌 채 태어난 우리가 다른 이도 아닌 어머니와 이별하는 일에는 서툴다. 시의 도입부는 이미 장례를 지냈던 어머니의 묘소, “한숨 한 올 새지 않게 다져둔 어머니의 지붕을/ 포크레인이 걷어”낸다.
소름끼칠 수도 있는 무덤을 여는 행위가 이토록 고즈넉한 엄숙함이 흐르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무덤을 여는 행위’는 이별장면이 아니라 오랜 이별로 그리웠던 어머니를 다시 만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봉분이 열리자 “겹겹의 어둠을 열고/ 대들보와 척추와 갈비뼈 서까래가 나란히 뉘어 있”는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된다. 육탈되어 앙상한 뼈로 보고 놀라지 않는다. 뼈로 분한 모습일지라도 분명 그 유골은 그리움의 씨앗으로 평생을 가슴에 자라온 어머니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의 중반은 무덤 속에서 “어머니의 생이 빌려 쓴 것들을 모두 다 돌려주고 땅속에 들었어도 소멸 못한” 남은 유골의 모습을 통해 어머니의 지상의 삶을 반추한다.
“피난 때 골절됐던 정강이뼈 어긋나게 붙은”모습을 통해서는 골육상잔의 민족적 비극의 시대를 살아간 역사의 희생양임을 알게 하고, “의치 값 아깝다고 그대로 살았던 어금니자리”에서 팔남매를 키우기 위한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당신의 몸을 위해 마땅히 받아야 할 의료적 시술도 받지 않으신 어머니였음을 상기한다.
골절된 “저 다리로 저승 그 먼 곳을 아직도 걸어가고” 계신 어머니임을, “심장이 있던 자리 가득 매운 흙빛이 유독 검”은 것을 보며 자식걱정으로 불철주야 애태운 어머니의 가슴을 생각한다. 이미 어머니의 나이가 된 자식들은 어머니의 유골의 남은 조각만 봐도 어머니의 숭고한 희생이 몸 저리게 느껴져 오는 것이다.
초상 때에 염을 하고 입관하기 전 마지막이라고 잡아보았던 손을 다시 유골이 된 상태에서 “흙이 된 어머니의 손을 움켜잡고 작별인사를 하는데/ 염주알 같은 손뼈들이 내 손안에서 달그락 거린다.”
이제 다시는 잡아볼 수 없는 차가운 어머니의 손을 놓고 싶지 않지만 그러나 이 마지막 손은 놓아드려야만 할 손이다. “뼈의 지도대로 한지 한 장에 차곡히 접”어 저승으로 보내드려야 하기에, “팔 남매의 거름으로 살다 간” 어머니를 “또 한 나무의 거름이 되기 위해” 가루로 바수어 나무의 뿌리에 묻어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늙음이 결코 추한 것이 아니라 후세를 위해 사랑과 지혜를 물려주고 작아지는 것이듯, 어머니의 수목장도 결코 끝이 아니라 후대의 후대들이 어머니를 다시 찾지 못하게 될지라도 어머니는 나무의 거름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시의 행간에 화자의 울음은 생략 되었다.
“흙집에 들던 날 차지게 울어주던 그때 그 곡비가/ 앞산까지 따라와 뻐꾹뻐꾹 울어”준다는 표현 속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내드려야 하는 속울음을 감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