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재학 中
인생을 살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스쳐지나가곤 한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사람의 유형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고 생각했건만, 밖에 나와서 보니 예측이 안 되는 사람이 정말 많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개성이 넘쳐 흐르는 캐릭터가 등장할 때면 시청자들의 재미를 위해 가공된 인물 정도로 생각했지만, 현실은 드라마, 영화보다 더 스펙타클했다.
대학교 안에서의 인간관계와 나름의 상식 그리고 짧은 시간이나마 갈고 닦은 내공을 토대로 여유롭게 사람들을 대하려고 하지만, 어느 모임이나 공간을 가든 이해하기 어려운 분들이 한 둘쯤은 나오기 마련이다.
그저 어렵기만 하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정말 사소한 일로 마음이 상하여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하고 있노라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각기 다른 기질과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 간에 마찰이 발생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현상이다.
배경, 취향, 상식 그리고 사고방식 등에서 맞지 않는 부분이 발견되면 관련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서로 조심하게 된다.
그리고 많지 않긴 하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상대를 미워하는 경우도 왕왕 있어서 인간관계를 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수시로 느끼곤 한다.
과거에는 나이와 권위를 갖춘 자를 중심으로 집단의 안정성을 추구했으나 개인주의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베타성을 조금은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공공장소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거나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 주변에 폐를 끼치는 행위들을 다양성의 범위 안에 편입시킬 생각은 없으니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각자의 개성이 존중받는 풍토가 정착되면 수직적이고 규율을 중시하는 문화를 가진 전통적인 조직입장에서는 불편이 발생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
사람은 원활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쓰곤 한다.
회사, 동호회, 연인과의 데이트 등 여러 상황에 맞춰서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곤 한다.
혹자들은 나는 어디를 가든 꾸밈없이 행동을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것일 뿐 사람이라면 본인이 처한 환경에 맞게 성향과 태도가 약간씩 조정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사람들은 상황에 맞게 적절히 처신을 해나가지만 한편으로는 본인이 쓴 가면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사회 생활을 반듯이 하는 사람일수록 내면 안은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을 확률이 높다.
밖에 보여줄 수 있는 내 모습의 비중이 늘면 늘수록 숨기고 싶은 내 모습의 비중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숨기고 싶은 나의 모습은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기이한 성향 따위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혼난 기억으로 인해 억제된 성향, 연인이나 친구에게 놀림을 받은 기억 등의 이유로 사람은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자신의 모습이 존재한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양성의 존중은 큰 희망이 될 수 있다.
본인 생각에 환영받지 못할 것 같은 행동을 하는 타인이 박수갈채를 받는 광경을 보면서 내 안에 억눌려 있던 또 다른 나를 표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다양성의 존중이 개인의 이기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존재하긴 하나 삶은 조금 더 온전하게 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인의 개성이 더욱 존중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