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진 변호사 칼럼](7)'하르방'이라는 별명을 얻고 열등반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다
[허용진 변호사 칼럼](7)'하르방'이라는 별명을 얻고 열등반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다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09.30 0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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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드리는 매화 한송이' 자서전에서
허 변호사의 눈물과 집념 성공 인생 스토리
허용진 도당위원장
허용진 도당위원장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다. 절대적으로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 다른 환경에서 온 사람도 일단 그 환경에 적응하면 과거의 때는 벗어간다.

허용진 변호사가 학교에 다시 입학하면서 그의 직업은 학생으로 전환됐다. 학생이 되면서 그는 자신의 부지런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네 살 어린 후배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나 그는 그 길을 간 것이다. 오로지 공부가 일이고 특히 나이가 많다보니 느끼는 게 많았을 것이다.

그런 결과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은 고등학교 때 판도를 바꿔버린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바로 고등학교 시기이다. 이 때 졸업 후 그의 미래, 직업, 인생이 판로가 대부분 결정된다고 본다. 

고등학교 때 인생을 잘 설계한 사람은 미래가 좀 더 밝다고 생각된다. 

한편, 허 변호사는 서귀포시 서호동 출신으로 서호초등학교와 남주중·고교, 고려대학교를 졸업했으며 대학 3학년 때인 1985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인천·울산·광주·서울동부지검 검사와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조폐공사 파업유도 특검 특별수사관, 서울북부지검 부부장검사, 대구·의정부지검 부장검사 등을 역임했다. 의정부와 서울 등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다 2014년 서귀포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허용진 변호사 칼럼은 변호사 활동까지만 이어질 예정이다. 허용진 변호사의 성공 스토리, 많은 응원과 성원바랍니다. [편집자 주]

진학을 선택한 후 굳은 의지로 정진하였다. 오랜 학업중단의 공백기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선 오로지 그 길만이 정답이었다.

4년 어린 동기들과 함께 첫 등교를 했다. 동기생들이 등교하자마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궁금증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게 선뜻 말을 걸지도 못하고 자기들끼리 나이가 왜 저리 많아보이냐. 무슨 사고를 치다 이제야 입학했다. 혹시 말썽꾸러기 아닌가. 공부는 제대로 하겠나하고 수군댔다.

아침 조회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들어와 학교생활에 대한 말씀 끝에 나를 소개하였다. 남주중을 졸업하고 가정형편 때문에 4년 뒤늦게 진학했다, 그래도 남주중 다닐 때는 장학생이었다, 앞으로 잘 지내라 등등.

<과거 남주고등학교 전경>선생님의 설명에 동급생들은 다시 수군대기 시작했다. 어떤 녀석은 내 친구 동생이기도 하고 또 어떤 녀석은 자기 형보다 내가 나이가 많기도 했다. 자연스레 나에 대한 호칭이 화제가 되었다. 이름을 부를 수는 없고 그렇다고 형이라 부르면 어색할 같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누군가 장난처럼 '하르방' (할아버지의 제주도 사투리)이라 부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자 너나 할 것 없이 호응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하르방으로 통했다. 그 별명이 전교에 번지는 데는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들도 '하르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단어 자체에서 풍기는 친근함과 애교스러운 발음 때문인지 나도 그 별명이 그리 싫지 않았다. 입학 전 걱정했던 학교생활에 대한 막연한 우려도 '하르방' 덕분에 다소 해소되었고 어린 동급생들과도 쉽게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교 동창생 상당수는 아직도 나더러 '하르방'이라 부른다.

제주의 상징인 돌하르방을 볼 때마다 옛 추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다. 간혹 돌하르방이 제주의 상징을 넘어 허용진의 마스코트라 생각하면서 역시 제주와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그 엉뚱한생각이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새로운 고민의 화두를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화두는 화두일 뿐 내 고향 제주를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을 해봐도 특별한 재주가 없어 법률사무소를 만들어 가끔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고작일뿐이다. 그러다 보면 어떤 계기가 인연이 되어 해야만 될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한편 담임선생님은 그 해 신입생들이 개교 이후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라 제주시의 명문이라는 오현고, 제주제일고 신입생들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며 남주고가 명문고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니 자부심을 갖고 학업에 힘써 줄 것을 부탁하셨다.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알게 되었지만 당시 남주고는 우수한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며 입학시험 성적순으로 상위 60명은 별도로반을 편성하였다. 결국 성적이 우수한 60명은 이른바 '우등반'이 되고, 나머지 240명은 '열등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뒤에서 1등' 한 나는 당연히 '열등반'에 편성되었다. '열등반'에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몹시 부끄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오기가 생겼다.

아무리 4년 동안 공부를 하지 않았기로서니 중학교 시절까지 공부 못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공식적으로 공부를 못하는 학생으로 분류되었던 것이다.

4년 동안 공부를 뒷전으로 한 건 생각지도 않고 '열등반'에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오기를 느꼈던 그때를 돌이켜보면 다소 어이없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오기를 넘어 한편으로는 벌이나 키울 걸 왜 여길 왔나 하는 후회도 순간 들었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무렴 공부가 4년간의 노동보다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한 번 열등반이 졸업할 때까지 열등반도 아닐 터, 차근차근 처음부터 시작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첫 수업을 맞았다. 수학시간이었다. 막상수업의 큰 줄기들은 이해가 되는데 중학교 때 배운 내용들이 워낙 감감한지라 곳곳에서 막히는 느낌이었다.

이어서 영어시간이 되었다. 한 마디로 어려웠다. 예전에 배운 영단어, 영문법을 모두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 첫 영어시간에서 얻은 유일한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수학, 영어뿐 아니라 사실 모든 과목이 그랬다. 중학교 시절 배운 것들이 내 머리 속에 남아 있을 리 만무했다. 모든 공부는 지나온 과정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아무 때나 아무 준비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노동을 하면서도 조금씩 중학교 과정을 복습이라도 해 둘 걸!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시간이 흘러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말이다.

그날의 후회탓인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검사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잠을 자기 전 꼭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습관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다.

등교 첫날 집에 돌아와 혼자 곰곰이 생각을 정리했다.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공부하자. 어렵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다짐을 하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은 대강 이러했다.

우선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서는 국어, 수학, 영어가 문제다. 국어는 수업시간에 충실히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별도로 예습이나 복습을 하지 말자. 수학과 영어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수학, 영어에 집중하자. 국어 성적이 다소 저조하더라도 대신 남들이 어려워하는 수학, 영어성적으로 극복하자. 그 것이 내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 계획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국어교과서를 수업시간 외에 읽어본 적이 없다.

하르방'이라는 별명을 얻고 열등반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다

다음날 초등학교 친구들을 통해서 중학교 3학년 수학책과 영어책을 얻었다. 학교에서는 수업에 충실하고 하교 후에는 집에서 중학과정 수학과 영어를 혼자 공부했다. 고등학생용 참고서도 물론 참고했다.

시간이 흘러 중간고사 시험을 치렀다. 충실히 수업에 집중하였던 결과 성적이 매우 좋았다. 우등반의 상위권 학생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성적을 얻었다.

담임선생님이 따로 불러 시험 때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는지 넌지시 물었다. 중학교 시절 내 성적을 잘 모르는 다른 몇몇 선생님들이 오해를 한다는 것이었다.

황당한 말씀이었으나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담임선생님조차도 다른 선생님들의 오해를 핑계로 나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운이 좋아서 성적이 잘 나온 것일 수도 있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에게 격려는 고사하고 나의 노력을 '커닝'이나 '우연'으로 매도하니 기분이 상하였다.

물론 그러한 생각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4년 동안 학업을 중단하였다가 거의 꼴찌로 입학한 학생이 느닷없이 최상위권 성적을 얻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설명이 안 되니까 말이다.

어쨌든 첫 중간고사 이후 나에 대한 선생님들의 태도가 조금 달라지기는 했고 동급생들의 시선도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학교를 늦게 들어온 '하르방'이었는데 이젠 어쩌면 공부를 잘 하는 '하르방'일 수도 있으니 지켜보자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공부는 나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 할 수 있는 중요한 승부수일 뿐 동급생이나 선생님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혼자 충실히 학업에 정진할 뿐이었다.

공부에 왕도가 없다는 말을 되새기며 더욱 분발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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