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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면 되지"...고경준 대표"내가 돼지 키운 것이 아닌 돼지가 나를 키워"
[인터뷰]"하면 되지"...고경준 대표"내가 돼지 키운 것이 아닌 돼지가 나를 키워"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05.27 17: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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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최초 부자가 1억 기부로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사회적 책임 다해
본격 양돈업 시작, 1998년 스무살 때부터 ...당시 사육두수 약 1천여 두
양돈복지 차원 ...약 2500두 돼지에서 계획적으로 약 1500두 규모 줄여
돈분 한 포에 배달까지 5천 원...돈분 팔아 생기는 1년 수익 약 3천만 원
돼지사업발전 위해 종돈, 사료도 통일해 규격 돈을 만들어야 맛이 일정
사육기술, 품종, 사육기법, 사육환경 비슷해...제주 돼지고기 맛 비결 '물'
고경준 대표
고경준 대표

"본립도생 本立道生 ...기본이 바로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 -논어 학이편 2장

젊은 나이인 20대부터 아버지가 일궈낸 양돈산업에 뛰어들어 인생을 걸고 있는 고경준 대표.

1978년생으로 올해 나이 마흔다섯이다. 젊은 나이인 20대에 아버지(고순현)가 일구고 있는 양돈에 인생을 걸고 시작했다. 아버지는 처음 제주시 도두동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제주시 해안마을축산진흥원 옆에서 양돈장을 운영 중에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아너소사이어티(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07년 12월 설립한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클럽)의 회원일 정도로 사회봉사와 기부에도 앞장서고 있으며 양돈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글 쓰고 사진 찍는 취미가 있어 책 <길 위에서, 삶 위에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시대적 조류를 늘 읽고 연구할 뿐 아니라 향후 양돈업이 가야 할 방향에 비전 제시를 하고 싶은 중견 양돈인이다.

고경준 대표의 부친인 아버지 고순현 씨는 양돈 사업을 처음 제주시 도두동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제주시 해안마을축산진흥원 옆에서 양돈장을 운영 중에 있다.

특히, 이들 부자는 나란히 사랑의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클럽(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해 사회봉사와 기부에도 앞장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자가 눈여겨본 것은 고 대표의 취미(?)활동이다. 취미라고 보기엔 전문적인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데 책 농장을 운영하면서 <길 위에서, 삶 위에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왜 문학을 접목했느냐는 질문을 통해 고 대표와의 만남을 갖게 됐다. 고경준 대표는 40대라고 하기엔 20대 젊은이 모습처럼 젊게 보였다.

고 대표에 따르면 양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무렵부터라는 것. 당시 양돈장은 운영하던 아버지가 제안을 했다는 것.

그는 아버지 말씀을 듣고 조금 고민을 하긴 했지만, 평소 동물 키우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승낙하고 당시 고등학교도 농업고등학교 축산과로 진학하게 됐다는 사연을 전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다닌 학교지만 이 길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고 했다.

예전 아버지가 양돈 일을 할 때는 가축분뇨를 길에 널어놓고 말렸었다는데 그 작업을 가족들이 했고 고 대표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고 언급했다.

"저에게 있어 이 길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가축분뇨처리에 대한 기준이 강화되어 과거처럼 길에 널어놓고 거름으로 사용하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됐다.

아버지 양돈 일을 도와드리기도 했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축산과로 진학한 까닭에 현장 실습을 많이 다니곤 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축산진흥원에서 약 한 달간 실습했었고, 대학교 때에는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의 '백록축산'이라고 거기서 실습을 했었다.

고 대표는 실습하면서 비로소 돼지 키우는 재미를 알게 됐다면서 '자돈실'에서 밤에도 일하곤 했는데 새끼들이 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마냥 좋았다고 추억했다.

고경준 대표
고경준 대표

그래서 일에 빠지다 보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낮으로 그 일을 하게 됐다며 고등학교, 대학교 축산과를 다닌 것은 꽤 많은 도움이 됐다고 언급했다.

이론적으로 공부한 것을 백록축산과 저희 농장에서 실습하면서 이론과 실제를 접목할 수 있어 좋았다며 웃었다.

고 대표가 당시에 가정에 빚이 많았다고 했다. 1998년 당시 약 7억 원 정도의 빚이 있었다는 것. 그런 까닭에 학교 진로에 대해 고민도 있었는데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또는 다른 일이 내 적성에 맞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대학 진학 후에도 곧잘 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배부른 고민이었다고 했다. 형제가 딸 4명이고, 아들인 자신이 아버지의 조력자가 되어 빚을 갚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어 외아들로서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 대표가 양돈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98년 스무 살 때부터인데 당시 양돈장의 규모는 사육두수가 약 1천여 두 정도였다고 했다.

지금처럼 외국인 근로자가 있지 않았던 때라 고생을 많이 했는데 한국인 근로자도 여럿 있었지만, 그분들은 일을 오래 하시는 분이 없었다는 것. 3일 정도 일하고 가버리는 까닭에 거의 혼자 일을 할 때가 많았다고 했다.

고 대표가 어려웠다는 것은 돼지분만 보조였다고 했다. 밤에 잠도 거의 못 자고 새끼 분만을 도와야 했는데 시간에 맞춰 주사도 놓아줘야 하고, 분만하고 나면 엄마 젖도 물려줘야 하고, 어떨 때는 태 자체를 싸고 나오는 것을 잘라 줘야 했다.

만약 잘라주지 않으면 숨이 막혀서 죽을 위험도 있는데 어떤 때는 탯줄은 땠는데 숨을 안 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인공호흡을 해서 새끼를 살려내야 하는 등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아버지 곁에서 배우면서 서서히 양돈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고 대표가 한창 일을 할 때는 잠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어떤 경우에는 두 시간 정도 잔 적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몇 날 며칠을 못 자서 거의 비몽사몽으로 지냈던 적도 적지 않았다.

어떤 날은 저녁에 밥 먹다가 엎어졌었던 적도 있었고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다음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나중에 일어났는데 그때 제가 느낀 것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맛있었던 잠을 잔 것 같은 기분이었다며 잠깐의 잠이었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 제일 맛있었던 꿀잠이었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그야말로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어렵기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고 아예 돼지우리에 살면서 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양돈만 하셨던 것이 아니라 장사도 해서 양돈장 내부의 일은 전적으로 고 대표가 담당했다고 했다.

하루 2~3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하는 데 이유가 있었다. 지금처럼 시스템화되기 전이다 보니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야 했다.

예전에는 돈 분을 사람이 일일이 치워내야 했다. 손으로 다 긁어내고 손수레에 담아서 길에 널어 말려야 했다.

말릴 때도 겹쳐지면 마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몇 차례 거치는데. 여하튼 이런 과정을 사람이 없어서 혼자 하다 보니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옆에서 긁어주시기도 했다. 이런 일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당연히 밖에 나갈 여유가 없었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도 소문이 났었다. 유학 간 것으로.

고 대표는 대학교 때만 해도 동아리 한 5개씩 활동했을 만큼 활동적이었다. 클래식 기타, 연극, 봉사 동아리, 토론 동아리, 그리고 학생회 활동 등 활발하게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갑자기 아예 보이지 않으니까 그렇게 소문이 났다.

그런데 고 대표에게도 새로운 눈을 갖게 된 계기도 찾아왔다.

2005년 12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육지에서의 1년 남짓의 기간이 고 대표의 양돈 인생에 중요한 자양분이 되는 경험을 갖게 된 것이다.

당시 유통에 대해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 아버지가 아시는 유통업계 지인과 인연이 되어 육지로 상경했다. 당시 고 대표는 직접 농장의 돼지고기를 가져가서 육지 마트에서 파는 일을 했다. 6개월간은 고기를 팔아보고, 또 6개월간은 육가공업체에서 직접 고기 정육 후 포장하는 그런 일을 담당했다.

고 대표가 갔던 곳은 경기도 수원과 서울이었다. 특히 수원에서의 활동이 기억에 남는다면서 수원 권선 GS마트에서 "제주도 총각이 판매하는 돼지고기입니다."라고 외치면서 판촉을 펼쳤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제주 돼지고기를 제주 총각이 직접 판매하니 아줌마들에게 인기가 꽤 높았다는 것.

2년 정도 육지에서 일할 계획이었지만 고 대표는 양돈장에 돈열이 발생하면서 그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애초 계획보다 많이 앞당겨 제주에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돈열의 여파는 상당히 컸다. 돼지가 많이 죽게 되자 돈사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질병에 걸린 돼지를 다 정리하고 돼지를 사 와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그 관리가 쉽지 않은 것이다.

관리가 안 되니까 이제 큰 돼지들도 막 흉막 폐렴으로 죽는 일이 생기면서 계획했던 것보다 좀 더 빨리 육지에서 내려오게 된 것이다. 내려와서 상황을 보니 고민이 엄청나게 됐다고 했다. 10년 가까이 죽기 살기로 해서 빚을 다 갚았는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게,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라 고민이 많이 되었다.

당시 나이가 결혼 전인 스물아홉 무렵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어쩌면 다 털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며 사람인지라 어떻게 고민이 되지 않았겠어요? 그때 멈춰서 신중하게 고민해봤다.

여기에 쏟은 열정 그리고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계속 생각해봤는데 다른 분야에 도전하려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 양돈 분야는 많이 아는 분야니까 아는 일에 에너지를 쏟는 것이 답이다. 그러니 한 번만 더해보자, 라는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고경준 대표
고경준 대표

그런 결정을 내린 후에는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고, 양돈장을 다시 정리하는 것에 힘을 쏟았다. 그때 키웠던 돼지가 약 1200두였다. 하루하루 돼지가 계속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것들부터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비육사, 유성사 습도 조절과 환기, 약 처방해 질병을 잡고, 그다음에 분만사 쪽과 종부사 쪽 하나씩 하나씩 다 잡아갔다. 정상화되기까지 1년 가까이 걸렸다.

그렇게 기간이 걸렸던 까닭은 이게 한 번에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것들은 큰 그것들대로 관리해야 되고, 돼지는 임신 기간이 114일인데 그러면 그전부터 교배시키고 임신을 또 잘 시켜야 한다. 그래야 새끼도 많이 낳고, 또 새끼를 낳은 엄마 돼지를 잘 관리해줘야 한다. 엄마들의 체형을 BCS(Body Condition Score, 체평점)라고 하는데 몸매 관리를 잘해줘야 한다.

어미돼지의 몸매를 관리하는 이유는 시기에 따라서 유량도 달라지고 엄마의 건강도 달라지고 그러면 모든 게 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신 초기, 중기, 말기, 또 젖 먹이기 기간 또 사료 관리, 이 모든 것이 어떤 일체가 돼서 잘 관리가 되어야만 생산성도 좋아지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연계돼 있어 한꺼번에 정상화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1년의 세월이 걸렸다.

고 대표는 좋은 양돈장을 만들기 위해서 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미돼지라고 말했다.

엄마가 건강해야 새끼도 건강하고 모든 농장의 시스템이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것. 그래서 엄마인 어미돼지에 투자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무기물과 비타민 등을 항시 많이 먹여주고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관리해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기간별 사료 관리인데 젖 먹이기 기간에 처음 낳았을 때는 많이 먹이면 안 된다. 왜냐하면, 젖이 꽉 차 있는데 사료를 많이 먹으면 뭉쳐버린다는 것. 그러면 그걸 또 짜줘야 하고 그런 관리들을 잘해야 하는데 분만한 당일부터 며칠 정도 관찰하면서 새끼가 또 몇 마리 달렸느냐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 사료 관리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도 알려줬다.

"끊임없이 관찰하면서 관리해줘야 한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나면 사료를 많이 먹일 수 있는 그 기술이 최고입니다."

어미돼지가 건강하면 좋은 유전자를 새끼에게 물려줄 수 있고, 새끼에게 질병이 전파되는 경우가 적다. 일단은 병을 옮겨주지 않아야 새끼도 건강하게 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사료를 많이 먹은 만큼 젖이 나온다.

이유 체중 1kg당 출하 일령이 7일 정도 차이 나는데. 그럼 5kg으로 이유했을 때와 10kg으로 이유했을 때 7×5=35, 거의 한 달 덜 사료를 먹이게 된다.

결국, 한 달 사룟값이 절약된다는 얘기인데 양돈장 지출 중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 사룟값이다. 지출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아울러 사료의 허실을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조절이 안 돼서 너무 많이 나오면, 돼지들이 사료를 먹을 때 흘릴 수가 있는데 이 부분을 보완하는 것도 사료를 줄일 방법이다.

또한, 사료를 먹다가 죽어버리는 사고율을 줄여주는 것 역시 생산성에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고 대표는 사람들이 돼지고기 가격이 올라가면 양돈장들이 좋아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농가 입장에서는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라고 말했다.

소비자와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적정 가격이 가장 좋다는 것. 뭐든지 너무 오르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돼지고기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이 다른 고기로 대체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비자를 한번 뺏기면 다시 돌아오기도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저희 농가의 입장에서는 적정한 가격으로 계속 유지되는 게 무엇보다 좋다는 것이다.

고 대표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2007년~2008년에 겪었던 경험 때문이다. 환율이 치솟았던 그 당시 전국에 양돈장이 1만2천 호가 있었는데 거의 1년 사이에 5천 호 가까이 문을 닫았다.

고 대표가 수원의 마트에서 일하고 제주로 돌아온 후 1년이 지난 무렵이었다. 그때 양돈장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 정상화되었지만, 돼지 가격이 폭락해 어려움에 또 직면하게 된 것인데 그때 제주의 돼지고기 가격이 육지보다 좋지 않았다고 했다.

육지보다 가격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리먼 브러더스(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2008년 9월 15일 뉴욕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된 사건) 사태와 맞물려서 소비가 위축됐고, 거기다 전염병이 창궐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때 kg 단가가 3천 원 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위기가 닥치면 돌파해야 했다. 고 대표는 육지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 가만히 지켜만 보지 않고 나섰다.

고경준 대표
고경준 대표

제주보다 육지의 가격이 좋으니까, 농장의 생돈을 싣고 배를 타고 육지로 향한 것이다. 저녁 5시 반에 녹동 가는 배를 타고 육지로 향했는데 녹동에 도착하면 밤 9시 반 정도가 됐다.

그러면 녹동에서 김해공판장까지 한 4시간 새벽에 운전하고 가는 것이다. 거기 가서 돼지를 하차하고 혼자 세차 다 하고 다시 녹동까지 와야 했다.

그때 우리 농장의 돼지만이 아니고, 다른 농장의 돼지들도 육지로 출하했다. 여기에서 출하하는 게 워낙 좋지 않으니까 도외 반출을 한 것이다. 그때 정책적으로도 그렇게 하는 것을 유도했다. 제주도내 가격이 너무 좋지 않으니까, 어느 정도 물량을 빼줘야 물량 조절을 할 수 있어 도외 반출을 유도한 것이다.

농장 정상화한 다음 해에 이런 일이 터져서 아는 형님에게 농장일을 도와달라고 해서 맡겨 놓고, 고 대표는 육지로 다녀오는 일을 했다.

그렇게 했던 기간이 1년 남짓 됐는데 그때 정말 위기였는데 행정에서도 큰일 났다고 판단해서 도의 반출 기금까지 조성해서 대처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싶을 정도로 위기였는데 농장일도 하고 육지 도외 반출도 다녀오고, 이 시기 또한 잠을 제대로 잤던 기억이 없다고 했다.

양돈농협에서 제주도 내 돼지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한시적으로 시행했던 도외 반출은 2010년도에 마무리된 것으로 기억했다.

그 이후에는 돼지 가격이 육지보다 더 비싼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그렇게 역전된 이유는 무엇보다 2010년 말에서 시작해 2011년까지 발생했던 구제역 사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지에 구제역 사태가 발생하면서 상대적으로 청정지역으로 꼽히는 제주의 돼지가 귀해진 것이다. 육지의 구제역 사태는 제주양돈 농가에는 기회가 됐다.

그때 고 대표의 농장은 생산성이 절정에 오르고 있는 시기였다. 농장에 무척 집중하고 생산성도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흑돼지 무려 22두 정도 할 때니까 어미돼지가 200두 정도 있었는데, 한 달에 380두 출하를 했다. 그런데 그때 당시에 구제역이 터지면서 가격이 또 올랐다.

2005년에는 빛이 거의 정리되었다가 약 3년 사이 13억으로 늘어났다.

그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돼지 구매비와 돼지우리 시설 정비, 그리고 폐사율이 오르면서 사룟값 비중이 오르고 약값도 많이 나가면서 빚이 13억으로 불어난 것이다. 그래서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빚을 갚아 나가기 시작했다.

양돈 농가의 입장에서 보면 양돈 농가가 빚을 갚기 위한 최고의 전략은 따로 없다. 바로 돼지를 잘 키우는 게 최고의 전략이다. 생산성을 높이고 사료 허실을 줄여 생산비를 줄이는 등 줄일 수 있는 것은 다 줄여서 빚을 갚아 나가는 것이다.

다행히 2010년 구제역 사태 이후 제주의 돼지 가격이 좋아지면서 그에 따른 빚도 점차 갚아 나갈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빛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걱정할 수준으로 남아있지 않고 지금 농장의 경영 규모로 봤을 때 부담 없이 갚아 나갈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

생산성을 높이고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시스템을 갖춰 놓고, 돼지 출하도 안정적일 뿐 아니라 돼지 가격 또한 안정이 되다 보니 큰 걱정은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고경준 대표
고경준 대표 작품 전시 포스터

2006년 농장의 위기가 온 후 어미돼지에 투자하고 생산성이 좋아지면서 2009년부터는 거의 한 13년간 안정 가도를 달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중간에 낙폭은 있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안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회고했다.

고 대표는 지금 양돈농장에서 약 2500두 정도 돼지를 키우다가 계획적으로 약 1500두로 그 규모를 줄였다. 냄새를 줄이려는 것과 동물의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의도 때문이었지만 그보다 더 농장을 운영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환농업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농가의 경우에는 돈 분을 말려서 일반 감귤 과수원이나 키위 농장에 판매한다고 했다.

사실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인데 서로 달라고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저희 농장에서 돈 분을 자체 처리하려 하니 사육두수가 1,500~2,000두 정도가 적당하다고 했다.

아무리 직원을 써도 사육 두수가 많으면 발효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 정도의 두수가 여유 있고 좋다는 것.

원래 모든 관리 시스템은 주 단위로 이루어진다. 목요일마다 이유를 시키고, 그다음 월요일, 화요일에 교배가 들어간다. 합리적으로 과정을 줄이다 보면 일을 집약해서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일을 집약적으로 하기 위해 농가에서는 올인 올 아웃 (All in All out) 운영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한꺼번에 들어가 한꺼번에 나가는 시스템으로 이렇게 하면 한꺼번에 청소하고 소독하는 등 질병을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50마리 들어갔다가 또 50마리 들어갔다가 이렇게 마구잡이로 운영하면 질병이 마구 섞일 수가 있다. 올인 올 아웃 시스템은 질병 관리에도 유용하고 생산과정 또한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요즘 많은 사람이 일과 생활의 조화로운 삶, 즉 워라밸(Work-life-balance)을 중요시하는 시기인데 고 대표도 농가에 맞는 워라밸 형태의 시스템이 무엇인지 계속 시험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현재 농장 인력은 고 대표를 포함해 외국인 노동자까지 4명이다. 그는 자신의 농장에 효율적인 인력은 4명이라고 했다.

대부분 농장에서는 천 두에 한 명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하는데 저희 농장의 시스템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워라밸이라는 관점에서 그렇다.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으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워라밸의 균형을 맞춰줄 수 있다.

사실 저에게도 이런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일종의 도전이다. 하지만 한번 도전해보는 것이다. 이 도전이 성공해서 많은 이들에게도 전파되어서 양돈장의 유용적인 시스템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면 하고 바랐다.

제가 시 쓰는 것을 좋아해서 시집을 내기도 했다. 그중에 '돼지'라는 시가 있다. 2집에 들어가 있는 시인데 내용을 요약하면, 내가 키운다고 생각했던 돼지가 알고 보니 돼지가 나를 키우고 있었다는 그런 내용이다.

자기 몸을 희생 돼지는 우리에게 단백질원을 공급하는 존재이다. 더 크게는 대지가 키우는 모두가 감사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제가 짧게 시를 썼다.

예전에는 저도 제가 열심히 해서 된 거지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예전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었는데 여러 가지 부분을 많이 느꼈지만, 그중에 한 가지 제일 감명 깊었던 건 뭐냐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회적 기반이 없으면 돈을 벌 수가 없구나 하는 것이다.

돼지를 아무리 잘 키워도 소비가 안 되면, 또 공판장에서 작업을 해주지 않으면, 또 식육점에서 판매를 해주지 않으면, 그리고 또 누가 사료 배달 안 해주면 돼지는 또 어떻게 키우겠는가?

이런 모든 사회적 기반이 있으므로 내가 열심히 하든 안 하든 돼지가 나왔을 때 돈을 벌 수 있는 그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참 감사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전부터 나눔이나 이런 거에 대한 생각은 많았지만 어쨌든 그 계기가 좀 뭔가 사회에 좀 더 내가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고경준 대표
고경준 대표 (사무실에서 고경준 대표랑)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는 돼지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나눔'에 대한 생각을 더욱 하게 됐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양돈하면서 위기도 많았고 부침도 적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나를 키운 것은 돼지라는 존재였다.

그런 생각을 계속하다가 2016년 5월 무렵, 비로소 나눔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버지와 함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 원 이상의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의 회원이 됐다.

제가 알기론 제주도에서 부자가 함께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도 음식이 있으면 사람들과 나누고 아버지도 빚 때문에 힘드신 가운데에도 나눔에 대해 항상 신경을 쓰셨다.

저도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학교 재학 시절 봉사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제 발로 동아리 하시는 분들한테 찾아가서 저 좀 데려가면 안 되냐 하면서 봉사를 갔었다.

그런데 2학년이 되면서 회원 가입해야 하니까 그냥 가입만 한 거지 저는 봉사가 좋아서 그냥 같이했었다. 그런 부분들이 이제 정말 너무 많이는 못 하는데 그때 당시에 또 빚이 많았다. 돈이 많아서 봉사했던 것이 아니다. 아너소사이어티 가입할 때도 부채가 약 7억 정도 있었던 때였다. 그런데도 이 정도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빚이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낌없이 나누는 돼지를 보면서 배운 것이다.

양돈 농가중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계신 분이 적지 않다. 양용만 사장님, 임일수 사장님, 김진욱 사장님, 김경용 사장님, 고권진 조합장님도 계시고 다들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고 그것들을 실천하고 있다.

2020년에는 230일의 행복 나눔 릴레이도 펼쳤었다. 사실 양돈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운 것만은 아니잖아요. 우리 양돈인들이 제주의 공동체를 위해 이렇게 나눔을 하다 보면 도민들도 우리의 진심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한다.

단군 이래 제주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는 요즘, 제주의 음식 또한 주목받고 있다. 제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제주에서 꼭 맛봐야 할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돼지고기를 꼽을 정도로 제주하면 돼지, 돼지하면 제주라는 공식이 성립됐다.

아열대 기후로 인해 예로부터 돗통시 문화가 발달하여 있는 제주는 육지와 달리 돼지고기 음식문화가 발달해 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돼지고기 육수에 해초 모자반을 넣은 몸국, 푹 끓인 돼지 사골육수에 무와 접짝뼈를 넣어 끓인 접짝뼈국 그리고 육지와 달리 돼지고기를 이용한 제주식 육개장과 고기국수 등이 제주를 대표하는 돼지고기 음식이다.

제주는 웬만한 동네 돼지고깃집을 가도 기본은 한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어떤 분은 우스갯소리로 축구로 치면 집 앞 동네 골목에 '메시'급이 있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제주 돼지고기 맛의 비결은 무엇일까? 양돈을 20여 년 넘게 하는 양돈인으로서 이것이라고 하며 꼽을 수 있는 비결은 '물'이 아닐까 한다.

요즘에는 육지의 양돈장들도 사육기술, 품종, 사육기법, 사육환경 등이 우리 제주와 크게 다른 바 없다. 특별히 다른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백 돼지 같은 경우에는 사료와 품종도 비슷하고, 물 외에는 크게 다른 점이 없는 것 같다. 물론 흑돼지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종자가 조금 다르지만요. 일반적인 측면에서 볼 때 물이 제주만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는 소비자가 원하는 등 지방의 비율에 맞는 사육비결을 꼽을 수도 있다. 사육 단계별에 따라 사료를 먹여줘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사육 단계별에 맞는 사료 주기와 양을 관리해주면 소비자가 선호하는 돼지고기가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마 제주의 대부분의 농가가 제주 돼지고기 맛의 비결로 단연 '물'을 꼽지 않을까 싶다.

사실 예전에는 방목도 했었다. 엄마 돼지들을 임신 말기에 흙에서 구르며 목욕하게 했다. 그때 엄마 돼지들이 무척 행복해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은 방목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예전에 잠깐 그런 생각을 했었다.

땅을 사서 그 마지막 단계에서 문을 열어줘서 운동하고 또 저녁 되면 들어와서 밥 먹고 그런 식으로 해서 마지막 단계를 하려고 했었던 적도 있다. 그런데 민원도 그렇고 모든 여건이 방목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까 생각으로만 남아있긴 하다.

고경준 대표
고경준 대표 시집 전시 기간중 이영숙 예비 시인님(좌)과 함께

하지만 돼지한테는 어찌 보면 정말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밖에 나가서 풀밭에서 운동하다가 들어와서 자고 먹고 또 이제 아침 되면 또 나갔다가 또 들어오고…. 제가 따로 벤치마킹하러 다닌 것은 아니다. 그냥 뭐 일반적인 공간 확보 차원에서 생각해본 것이다.

지금 우리 농장의 단계는 콜린농장, 자원순환, 동물 복지의 아주 초기 단계로 보시면 될 것 같다. 동물 복지 농장은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다.

저도 일단은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건 해보려고 하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또 돼지도 지금 1500두에서 1000두로 줄여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수익성이 떨어지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쉽지 않은 것이다. 사업이라는 게 지속 가능해야 하니깐.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거창한 동물 복지는 일단 힘들다. 지금으로선 내가 할 수 있는 동물 복지를 실천하자. 그게 바로 동물 사랑인데요. 그 첫 출발은 동물을 괴롭히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약 십 몇 년 전에 한 부부가 저를 보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장님은 돼지하고 대화하시네요?"라면서 무척 신기하게 바라봤다. 저는 엄마 돼지하고 대화한다고 생각한다.

눈곱 같은 게 껴있으면 어디 아프냐? 라고 말을 던져보기도 하는데 돼지는 말을 못 하니까 계속 제가 말하는 거죠. 귀도 보고 또 돼지의 그 똥을 이렇게 살펴보면 건강 상태를 알 수 있거든요. 그것을 보면서 밥을 안 먹었다고 하면 자꾸 물어보면서 어디가 안 좋은지 대화를 통해서 찾는 거죠. 그런 것들조차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동물 복지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경준 대표
고경준 대표

그 외에는 공간을 확보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돼지가 예민한 동물이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공간을 확보해주도록 노력하고 있다.

왜냐하면, 돼지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물돼지라고 해서 육질이 좋지 않게 나올 수도 있다. 멍도 들고, 그런 부분을 방지하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먼저 하고, 단계별로 차츰차츰 동물 복지를 실천해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야생마처럼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이죠. 우리가 목적을 갖는데 어떤 목표라든가 꿈을 갖기 마련인데, 언제부터인가 그것에 얽매이게 된다. 그런데 이제 저는 꿈이나 목표가 있어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룰 수도 있고 못 이룰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뭐냐면 오늘 하루하루의 행복이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게 뭘까. 지금의 꿈이 뭘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미래의 꿈은 미래의 꿈으로 놔두고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저는 명예를 아주 중요시한다. 내 본성 자체가 그런데요. 근데 그것조차도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는가,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저에게 계속 묻고 있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2집의 제목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의 길을 가자는 의미로 《야생마>라는 타이틀을 붙여 본 것이다.

고대표와의 만남은 비가 오는 5월 초였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정리가 안됐다. 사실 농장 사무실에서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고대표의 표정을 보면서 순진한 초등학생 같았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그동안의 노력에 돼지똥냄새가 아닌 아름다운 냄새가 나왔다. 돼지 복지를 생각하면서 적정량의 돼지를 키우고 있다는 말에 감동이 밀려 왔다.

젊은 패기를 갖고 제주 양돈산업에 몸을 담고 있는 그를 보면서 돼지고기 소비자로서 한편으론 안심이 됐다. 그의 노력이 좋은 결실로 이루질 것이라고 생각됐다. 일에만 열중하는 것도 아닌 문화와 접하면서 가족도 생각하는 고 대표의 철학이 너무나 멋졌다.

그의 철학처럼 가치 있는 삶을 같이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의 앞날에 즐거운 일만 있기를 바라면서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 신비로왔다. 도깨비도로를 돌아 멈추고 그의 농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의 미소가 오래동안 남아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고경준 대표의 프로필

△1989년 제44회 남초등학교 졸업
△1993년 제42회 제일중학교 졸업
△1996년 제85회 제주농업고등학교 졸업
△1998년 제24회 제주전문대학교 축산과 졸업
△1998년~2023년 현재까지 제일 농장 운영
△2015년~2017년 3월 한라대학교 음악과 졸업
△양돈농협 대의원
△한돈협회 제주지부 감사
△한돈협회 자조금 위원
△한국농업경영인 제주지회 축산분과장
△제주지역 최초 부자 아너소사이어티 2016년 5월 가입

#. 제일농장 양돈 사업장은?

△제주시 해안동 48-14 소재
△1500두 규모의 흑돼지 농장

#. 현재 운영 중인 양돈 사업은 언제부터, 계기는?

△1985년 시작(아버지)
△1998년 농장 일 시작(고경준)
△아버지의 권유로 제주농업고등학교 축산과에 진학했고 제주전문대 축산과를 졸업하면서 농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제주에서 양돈 사업에 있어서 장점과 문제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장점
제주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돼지고기(한돈)일 정도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육지하고 떨어져 있어서 질병 차단 부분에서 우수하다.
청정 환경이 고기의 품질을 향상시킨다.
△문제점
냄새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게 문제다.

#.제주의 양돈 사업을 청정사업으로 탈바꿈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대표님의 생각?

-. 저희 농장도 냄새 저감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2019년도에 냄새 저감시설(바이오 커튼)로 5억 정도 투자했고 2022년에도 냄새 저감시설을 추가 설치했다.

많은 농장이 도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고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 시와 사진 등 문학에 관한 관심은 언제부터?

-.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들과 단절되었을 때 여러 종류의 책을 읽으며 삶에 대한,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 자연스럽게 올레길을 걷고, 오름을 오르면서 자연과 사람이 주는 메시지(아주 개인적인 기록들)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지인들과의 대화 중에 가끔 얘기를 나누었는데 좋아하는 모습에 글과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집을 만들고 싶은 강한 감동에 이끌려 첫 시집 '길 위에서 삶 위해서' 두 번째 시집 '야생마'를 출간했다.

시집을 만든 목적이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라서 시화전을 통해 모금해 주신 금액 1004만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첫 시집의 주 테마는 나의 길을 찾는 과정이다. 삶 가운데 자연과 사람들이 저에게 준 영감(삶의 시)이다. 그리고 삶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조금 더 남아있어서 이번에 2집 '마이웨이'를 출간했다.

2집의 테마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나를 찾았다면 나의 길을 걸어가자는 것이 2집의 주된 내용이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돼지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워라밸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걸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과 생활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고 있다. 제가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한 취미는 길을 걷는 것이다. 특히 지난 2008년에 개장한 제주의 올레길 걷는 것을 좋아한다.

제가 올레길을 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동안 양돈장에 파묻혀 일만 하다 보니 등산 가는 것도 길을 걷는 것도 또 다른 취미 생활도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어디를 갈 수가 없게 되었잖아요. 그때 제게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제주도를 내가 많이 다녔었나? 많은 사람이 일부러 찾는다는 올레길도 걸어보지 않았네 하고 생각했다.

정말 20대부터 치열하게 살았다. 제가 지금 마흔다섯이 되었는데 마흔이 넘으면서 인생의 많은 질문을 제게 던지게 된다. 그래서 길을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자 했는데, 올레길을 한번 걸어보니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가 2020년 10월 무렵이었다. 그때 걸은 코스가 코스로, 화순에서 송악산까지 가는 코스인데요. 그렇게 길지도 않아 바다 보면서 걷기에는 안성맞춤 코스였다.

그때 이후로 올레길에 푹 빠져서 2021년 4월까지 26개 전 코스를 완주했다. 거의 6개월 만에 완주를 한 셈인데요.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걸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해서 좀 틈틈이 갔다. 애들하고도 가고, 어머니도 모시고 가고 육지에서 온 누나네와도 같이 가고, 동료들과도 가고 하면서 완주할 수 있었다.

20대부터 전쟁을 치르듯 살다 보니, 정작 제 마음을 돌보는 데는 인색했던 것 같다. 이 고비를 넘기면 저 고비가 오고, 또 넘었다 싶으면 위기가 찾아오는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마흔을 넘어가니, 농장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고, 내가 행복해야 행복한 돼지, 행복한 농장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많이 찾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걷는 것이었다. 제 생각엔 고생했던 날들이 저를 성장시킨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공은 그냥 운이 좋아서 얻는 경우도 많은데요. 하지만 성장은 운이 좋아서 되질 않아요. 고통 없고 아픔 없는 성장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생각이 많아지면서 책들을 많이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런 책 저런 책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곤 했는데 제 기억에 유독 오랫동안 남았던 책이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이 쓴 책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이다.

조화로운 삶, 조화로운 삶의 지속, 아름다운 마무리 등 세 권이 출간되어 있는데 그걸 다 읽고 나서 삶이라는 게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

그 사람들이 사는 인생을 보니까 일 적당히 하고 자신의 시간을 갖는 것이에요.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너무 보기 좋은 거예요. 그럼 내가 원하는 삶은 뭘까 자꾸 물어봤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은 지속하지만 사실 무언가에 집착하기보다 매 순간을 사는 것이죠. 이 순간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행복을 나누고, 그게 삶에서 제일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를 쓰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고경준 대표
제일농장 입구 고경준 대표(우) 함께

#. 돈분으로 돈을 번다는데 설명?

돈분의 경우 한 포에 배달까지 하면 5천 원에 판다. 돈분을 팔아서 생기는 1년 수익은 약 3천만 원 정도이다.

만약에 그것을 다 위탁 처리하면 1년에 한 8천만 원 정도의 생산비가 더 들어가는 것이라고 고 대표는 예측했다. 그런데 그 8천만 원 자체가 절약되는 것이고 또 거름을 팔아서 또 그게 순환이 되는 것이니 돼지가 너무 좋은 게 그것이죠. 버릴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저는 뭔가 하겠다고 하면 그냥 끝까지 하는 스타일이다.. 위기를 많이 겪다 보니까 어떤 생각을 항상 했냐면 잘 될 때는 안 될 때를 준비하고 안 될 때는 잘 될 때를 준비한다.

예를 들어서 돼지 가격이 좋지 않으면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경향이 높잖아요? 가격이 좋지 않으니까 열심히 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하면서요. 그런데 그럴 때 저는 더 열심히 일한다. 왜냐하면, 분명히 좋을 때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때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돼지 가격이 좋을 때도 그렇다. 돼지 가격이 올라가면 수익이 생긴다.

그러면 농가들은 다른 곳에 투자도 하고 관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저는 농장에 집중한다. 그 이유는 몹시 어려운 시기가 오면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기 위함이다. 감가상각비도 따로 떼어놓고 예비비도 준비하고 빚도 줄여 놓는 것이다. 만약에 어려움이 와도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20대부터 양돈 일을 하면서 위기를 많이 겪다 보니 저만이 가질 수 있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잘 되든 그렇지 않은 그런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제 개인적인 인생 철학은 '가치 있게 같이 살자'다. 농장의 원래 좌우명은 '하면 되지(돼지예요.) 그리고 농장의 원래 3대 비전은 틀린 농장, 자원순환, 동물 복지였다. 이 세 가지로 해서 일단은 농장을 깨끗하게 꽃도 심고 벽화도 예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자원순환과 동물 복지는 아주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복지를 위해 돼지를 줄였다. 그만큼 돼지가 살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수익은 줄었다. 수익만을 위한 농장이 아니고 전체적인 환경을 위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동기는 자원순환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출발한다. 돼지 자체가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존재이다.

#.문학에 대한 시인님의 생각은 어떤 마음인지?

-. 자연이 주는 영감. 그리고 어떤 문학적 장치를 통해 나만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다.

#.인생의 좌우명이나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어떤 면에서 존경하는지?

-. 좌우명은 '가치 있게 같이 살자'라는 것이고 존경하는 사람은 무엇이든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며 저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무 한 그루가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으므로 우리는 숨을 쉬며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와 같이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존재할 때 숲을 이루고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농장 만들기 실험은 계속되고 있는데?

-. 제주 돼지의 발전을 위해서는 소비자가 원하는 좋은 품질의 고기를 만드는 게 일단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돈농협이라든가 여기에서 계열화를 해서 좋은 상품들의 고기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런 것들이 가능하게 하려면 사료도 조합의 사료들로 제공되어야 통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종돈도 통일하고 사료도 통일하면 규격 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해야만 소비자가 오늘 먹어도 또 한 달 있다 먹어도 똑같은 품질의 돼지고기를 먹을 수가 있을 것이다. 믿음을 갖고 구매할 수 있는 품질이 좋고 균일한 규격 돈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 양돈산업이 가야 할 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클린농장, 자원순환 그리고 직원들의 조화로운 삶, 저의 조화로운 삶, 전체적인 조화로움을 위해 노력해나갈 것이다. 조화로운 농장을 위해 계속 끊임없이 행복한 실험을 해나갈 생각이다.

고경준 대표
고경준 대표 취미생활

#. 향후 양돈 사업의 비전은 어떻게 보시는지?

-. 사룟값, 인건비, 약값, 분뇨처리비 등 생산비의 상승으로 어려움은 있지만 생산성적을 올리고 환경적인 준비도 철저히 해나간다면 제주 돼지고기의 브랜드 가치는 높으므로 비전이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 도민이나 창업하려는 젊은 청춘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중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우리는 때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면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괜찮다. 쉽게 비유하자면 기타를 잘 치고 싶은 것은 하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기타를 잘 연주하기 위해서 연습은 해야 할 일이다. 둘 다 필요한 것이지만 아무 의미 없이 기타를 연습만 하는 것은 재미가 없다. 하지만 멋진 곡을 표현하고 싶어서 연습하는 것은 그 순간도 행복하다.

조금씩 표현이 되고 감정이 이입되면 너무 기쁘다.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멈추지 않으면 그것은 과정일 뿐이다.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나아가세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제일 중요한 것은 누군가에 의한 선택이 아니고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면 어떤 일이든 못 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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