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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한그루 시선 24 《사람 냄새 그리워》
[신간]한그루 시선 24 《사람 냄새 그리워》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04.22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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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순선 / 130*205 / 160쪽 / 10,000원 / 979-11-6867-091-4 (03810) / 한그루 / 2023. 4. 15.
[신간]한그루 시선 24 《사람 냄새 그리워》
[신간]한그루 시선 24 《사람 냄새 그리워》

병실에서 발견한 고독과 공존 그리고 시적 치유의 힘

한그루 시선 스물네 번째 시집이다. “병실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하여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다시 걸어갈 길을 생각합니다.”라는 시인의 말에서 보는 것처럼, 이번 시집은 주로 병실을 배경으로 한다.

병마와 싸우는 환자, 그리고 그를 돌보는 자, 그들을 바라보며 시인은 그 관계 속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을 곱씹는다. 그리고 아픈 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내재한 근원적인 고독,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고독함을 채우며 함께하는 삶을 응시한다.

병으로 인한 단절과 고독은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바 있다. 또한 질병뿐만 아니라 무수한 삶의 상처로 인해 자신의 근원적인 고독과 마주한 사람들이 있다. 시인은 그 단절의 시간을 응시하면서 시로 어루만져주고 있다.

고명철 평론가는 해설에서 “병마에 손쉽게 굴복하지 않기 위해 병마에 버티고 있는 아픈 자는 역설적이지만, 아픈 자를 대신해줄 수 없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근원적인/고독/건널 수 없는 강”의 존재 때문에 병마와 치열히 싸우면서 심지어 공존한다. 김순선의 시집 곳곳에서 보이는 아픈 자와 간호자들에게는 바로 이 ‘근원적 고독’이 도도히 흐르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이것은 아픈 자의 존재 가치를 추락시키거나 퇴락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픈 자를 간호하는 존재의 위엄마저 훼손시키지 않도록 하는 삶의 비의적 실재다. 그만큼 ‘근원적 고독’은 아픈 자와 연루된 이들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삶의 실재다.”라고 평했다.

■저자 소개

김순선

1951년 제주 사계에서 태어났으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제주작가》 신인상으로 등단하였으며 현재 〈한국작가회의〉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위태로운 잠』 『저, 빗소리에』 『바람의 변명』 『백비가 일어서는 날』 『따뜻한 국물이 그리운 날』, ebook 『사색, 책의 향기가 우리를 부를 때』 등이 있다.

E-mail: kss64042@naver.com

■목차

제1부 거울을 보는 여자

거울을 보는 여자 | 방콕 하는 여자 | 병실에서 출근하는 여자 | 소주를 좋아하는 여자 | 허공에 쓰는 편지 | 비밀하우스 여인 | 이상한 여행 | 부메랑 | 에밀레종 소리 | 노모의 설렘 | 트로트를 부르고 싶은 날

제2부 잠 못 이루는 사람들

영자 씨 | 아버지와 딸 | 조강지처 | 잠 못 이루는 사람들 | 한 모금만 | 대단한 갱년기 엄마와 사춘기 아들 | 요란한 아침 | 우울한 하루 | 환자와 간병인 1 | 환자와 간병인 2 | 환자와 간병인 3 | 자가 간병인

제3부 빈집

빈집 | 5층 안과 | 고장 난 로봇 | 부러움 | 폭력 | 치매 | 금식 | 아버지와 아들 | 내 발등으로 슬픔이 | 외딴섬 | 너, 코로나19 | 소나기 | 무거운 짐 내려놓으려 하네

제4부 유리창에 별이

위로 | 감사한 하루 | 노란 엽서 | 너의 미소 | 연두이고 싶어 | 봄을 기다리며 | 유리창에 별이 | 종소리 | 참회의 시간 | 낮달맞이꽃 | 한담 길 | 맨발 | 발만 동동 | 하루살이 몇 | 별자리 찾아

제5부 조밤나무

꿈은 사라지고 | 횡재 | 단풍나무 | 조밤나무 | 별은 사라져 | 멜잠자리 | 달 떴다 | 초당옥수수 | 추억의 한치빵 | 코스모스밭에서 | 내 이름 잊으셨나요 | 동백 열매 | 조개송편 같은 친구 | 싸락눈을 녹이며 | 달무리

해설 ‘병실/유년 시절’의 시적 치유의 힘 | 고명철

■시인의 말

앞을 향해
숨차게 달려오던
일상에서
잠시
쉬어가게 되었습니다

병실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하여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다시 걸어갈 길을
생각합니다

함께
옷깃을 여미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책 속에서

허공에 쓰는 편지

시설에서 왔다는 병실에서 만난
여인
날마다 허공에
편지를 쓴다

해독할 수 없는 문장을
꼭꼭 새기느라
손톱으로 얼굴에 생채기를 내어
야속한 간병인
엄지장갑을 끼워버렸다

붙일 수 없는
가슴 깊이 숨겨둔
못다 한 말
뭉뚝한 손으로
헛손질한다

할머니, 이름이 뭐예요
명 순 이

아니, 할머니 이름
명 순 이

그녀의 뇌리에 각인된 이름
자기 이름보다도 더 소중한
이름

명순이를 향한
못다 한 말
허공에 꾹꾹 눌러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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