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비판적 4‧3 연구
[신간]비판적 4‧3 연구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03.28 1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성만 엮음 / 이재승, 문경수, 김동현, 김민환, 김종곤, 이지치 노리코, 고성만 공저
140*195 / 326쪽 / 15,000원 / 979-11-6867-089-1 (03300) / 한그루 / 2023. 3. 27
‘완전한 해결’로 환유되는 현실과의 불화를 꾀하는 비판적 시각과 목소리
'비판적 4‧3 연구' 표지
'비판적 4‧3 연구' 표지

올해(2023년)로 제주4‧3 75주년을 맞는다.

 한국현대사의 비극이자 제주섬의 깊은 상처인 제주4‧3은 금기의 시대를 거쳐 ‘화해와 상생’ ‘어둠에서 빛으로’ ‘제주4‧3,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등의 깃발 아래 이제는 공적 영역에 자리한다.

4‧3특별법을 비롯한 귀중한 성과도 있었고 보상과 재심 등 그 해결 과정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하지만 이 책은 묻는다. “공적 해결 과정에서 획득한 유무형의 성과를 사회화하지 못한 채 유리관 속에 가두어 놓고, 4‧3 연구가 유리관 밖으로 나와 현실의 문제에 응답하기를 요청하는 연대의 목소리에 무응답한 지 이미 오래”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비판적 4‧3 연구”는 같은 이름의 4‧3 연구 시리즈를 여는 첫 책이다.

 “집단적 학술운동으로는 최초의 시도였던 『제주 4‧3 연구』(1999)의 시대 정신과 책무 의식을 계승하면서도, ‘완전한 해결’로 환유되는 현실과의 불화를 꾀하고, 비판적 시각과 목소리를 확보하기 위한 시도”로서 기획됐다. 

“『제주 4‧3 연구』가 닦아 놓은 토대 위에 서 있으나 그것의 경계와 한계를 의식하며,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마냥 휩쓸리지 않도록 반작용을 도모하고자” 하는 취지이다. 그에 따라 보다 새로운 시각을 견지한 연구를 한데 모았다.

이번 책에는 민족자결권과 저항권을 토대로 제주4‧3사건을 바라본 이재승, 재일제주인의 시각에서 제주4‧3을 다룬 문경수, 반공주의와 개발이라는 쌍생아로 폭력의 구조를 다시 보는 김동현, 폭동론의 ‘아른거림’ 속에 제주4‧3평화공원 조성의 정치학을 살핀 김민환, 제주4‧3트라우마와 치유의 정치를 다룬 김종곤, 오사카 4‧3운동을 기술한 이지치 노리코, 그리고 4‧3특별법이 고도화면서 오히려 편협화되는 과거청산을 다룬 고성만의 글을 모았다.

무크지 형식으로 기획된 “비판적 4‧3 연구”는 앞으로도 날카로운 비판과 그에 기반한 공고한 연대를 지향하며, 젊은 연구의 장을 마련하면서 새로운 4‧3 연구의 길을 열어 나갈 계획이다.

■ 저자 소개

이재승(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문경수(리츠메이칸대학 아시아·일본연구소 상석연구원)
김동현(문학평론가/제주민예총 이사장)
김민환(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부교수)
김종곤(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이지치 노리코(오사카공립대학 문학연구과 교수)
고성만(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

■ 목차

15 제주4·3사건, 민족자결권과 저항권(이재승)
51 재일 제주인의 시각에서 본 제주4·3-과거청산의 아포리아: 법정립적 폭력(문경수)
81 가라앉은 기억들-반공주의와 개발이라는 쌍생아(김동현)
111 제주4·3평화공원 조성의 정치학-폭동론의 ‘아른거림’과 세 곳의 여백(김민환)
163 제주4·3 트라우마와 치유의 정치(김종곤)
191 오사카 4·3운동이 구축하는 로컬적 화해 실천(이지치 노리코)
233 4·3특별법의 고도화, 과거청산의 편협화(고성만)

■ 머리글

『제주 4·3 연구』는 정치사, 군사사, 사건사 중심의 기존 정통사학에서 탈피하여 의학, 법학 등 각계의 4·3 연구가 결집했던 최초의 융복합 연구서이다. 4·3에 대한 다면적, 다층적 접근을 통해 개개의 사실과 해석이 상호 연관 속에서 ‘전체사’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기획됐는데, 수록된 11편의 연구논문 가운데서도 후학들에게는 특히 다음의 논의가 인상적이다.

사건 이후 50년간 도민들이 겪었던 치욕과 분노, 좌절과 체념, 그리고 가슴속 응어리진 피해의식 등 ‘4·3이 제주도민과 공동체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는 본래 사회학자나 문화인류학자들이 맡아야 할 주제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되거나 연구된 바는 없다. 이는 무엇보다도 ‘4·3’ 그 자체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 연구도 미진하고 개별적인 사례조사조차 충분하지 못한 탓에 ‘4·3 이후’에 대한 연구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러나 ‘4·3 이후 50년’을 맞는 시기에 진단된 “4·3 이후” 연구의 불/가능성에 관한 예측은 머지않아 수정되어야 했다. 상황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2000년 1월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되고 공적 영역에서 과거청산 프로그램이 본격화되면서 각 분야에서 “‘4·3’ 그 자체에 대한 진상규명”이 활발히 전개되고, “역사 연구”나 “개별적인 사례조사”의 성과도 속속 발표되기 시작했다. 윗글의 전망대로라면 “‘4·3’ 그 자체”를 넘어 “4·3 이후”에 대한 연구 환경이 비로소 조성된 셈이다.

한편 이러한 지적은 “‘4·3’ 그 자체”와 “4·3 이후”를 구획지어 각각을 별개의 세계로 배치하도록 빌미를 제공한다. 4·3과 4·3 이후, 4·3 그 자체와 4·3이 끼친 영향, 사실(史実)을 발굴·고증하고 의미를 분석·탐구하는 일이 분담되는 현상은 ‘4·3 이후 50년’ 이후 20여 년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 과정에서 “‘4·3’ 그 자체”의 범주를 묻는 질문은 생략됐고, “‘4·3’ 그 자체”로 합의된 시공간 속에 “4·3이 끼친 영향”은 고려되지 못해 왔다.

“4·3 이후”에 대한 고찰이 병행되지 않는 “‘4·3’ 그 자체”에 관한 연구는 가능한 것일까? 마찬가지로 “4·3 이후”를 탐구하는 작업에서 “‘4·3’ 그 자체”로 규정된 지식을 넘어서기 위한 시도 역시 부족했다. 어쩌면 이 두 영역은 상보적이며 선후 관계를 규정짓기 어려운, 맞거울(opposite mirrors) 같은 것은 아닐까?

“4·3이 제주도민과 공동체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가 쉽지 않은 이유에 대해 혹자는 사건 자체가 8년 가까이 지속됐고 또 ‘진압’ 이후 70년 이상 경과했다는 점을 꼽는다. 

사건의 여파와 후유증이 두세 세대를 거치면서 이미 우리의 생활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버린 까닭에 가려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분별하기 어려움은 그때그때의 변화들에 둔감했음을 자인하는 것으로, 경계를 정당화하는 감각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4·3특별법 체제하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공적 해결 과정에서 획득한 유무형의 성과를 사회화하지 못한 채 유리관 속에 가두어 놓고, 모든 해결의 단위를 ‘희생자’로 한정해 온 결과, 혐오와 배제의 감정 체계가 4·3의 상흔 위에서 새로운 싹을 틔우게 됐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신냉전적 질서 속에 빚어지는 갈등과 충돌의 한복판에서 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이 위협받을 때마다 4·3의 경험과 기억이 소환되지만, 4·3 연구가 유리관 밖으로 나와 현실의 문제에 응답하기를 요청하는 연대의 목소리에 무응답한 지 이미 오래다.

따라서 작은 실천으로서, “‘4·3’ 그 자체”와 “4·3 이후” 사이의 벽을 허물고, 경험과 기억, 유산을 현대세계의 다종다양한 사회 문제와 접합시키기 위한 질문을 던질 때다. 

이를 위해 4·3을 단순히 밝혀지거나 정리, 청산되는 피동적인 대상이 아닌,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창이자 경험례로서, 또한 현대사회의 부조리, 그리고 미래의 과제와 연결고리를 만들어 긴장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매개로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4·3’ 그 자체”가 그러하듯 “4·3이 끼친 영향”에도 탈/식민의 과제와 탈/냉전의 과제가 착종되어 나타난다.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장기적 냉전 현상에 대한 입체적인 시야가 4·3 연구에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4·3특별법 체제에서 절충과 합의를 통해 “‘4·3’ 그 자체”가 규명되어 온 과정과 성과, 의미에 대한 분석 또한 중요하다.

2000년 이후 제도권 영역에서 ‘희생자/유족’이나 ‘유적지’, ‘평화’, ‘화해’와 같은 용어가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획득하고, 본래의 개념이나 기능과 동떨어진 의미 지형을 구축해 가는 상황을 동시적으로 분석하는 일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작업이다. 

이 책의 필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대한민국 재외공관’이나 ‘제주4·3공원’, ‘트라우마센터’와 같은 공간은 과거청산의 이념이 전파되고 특정한 ‘모델’이 구축, 재생산되는 곳일 뿐 아니라 다양한 해석과 의미의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완전한 해결’을 견인하는 문법만으로 다종다양한 주체들의 각기 다른 사회적 처지와 다층적 기억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4·3 이후 50년’ 이후 20여 년이 지난 제주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순이삼촌』의 배경인 북촌리에서 동네잔치처럼 펼쳐지던 한밤중의 제사 풍경도 세대와 의식이 바뀌면서 마을과 떨어진 도회지나 해외에서 조상신을 맞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제례 공동체의 민족별, 국적별 분포 역시 다양해졌다. 하귀마을의 ‘영모원’은 한국사 교과서에 소개되고 대통령도 다녀가면서 ‘화해와 상생’의 터로 성역화하려는 욕망에 더욱 노출되게 됐다.

‘진압’ 이후의 인구 구조와 현상, 가족/친족의 변화에 관한 최신 연구가 발표된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후체험 세대로의 기억 계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새롭게 의미 부여됐던 ‘개방 세대’에 관한 연구 역시 2000년대 초반에 진행된 것이고, 그 이후의 세대는 어떻게 명명해야 할지도 공백으로 남아 있다. 

묵음 처리된 목소리, 결락된 질문들을 찾고, 현실 참여를 요청하는 호소에 4·3 연구의 응답이 더 이상 지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둠에서 빛으로’로 표현되는 단선적 발전 도식에서 의식적으로 이탈하려는 질문들이 더욱 필요하게 됐다.

이 책 『비판적 4·3 연구』는, 집단적 학술운동으로는 최초의 시도였던 『제주 4·3 연구』의 시대 정신과 책무 의식을 계승하면서도, ‘완전한 해결’로 환유되는 현실과의 불화(不和)를 꾀하고, 비판적 시각과 목소리를 확보하기 위한 시도로서 기획됐다. 

『제주 4·3 연구』가 닦아 놓은 토대 위에 서 있기는 하나, 동시에 그것의 경계와 한계를 의식하며, 구조와 체계를 문제시하고 사각(死角)을 찾아냄으로써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마냥 휩쓸리지 않도록 반작용을 도모하고자 한다.

■ 책 속에서

제주4·3항쟁은 한국민의 자결권을 침해하고 민중의 열망을 외면한 미군정에 대한 저항이었다. 제주4·3사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논할 때 흔히 제주4·3사건 또는 초토작전에 대한 미군의 개입을 강조한다. 

그러나 민중항쟁론에서 볼 때 4·3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민 전체의 이익을 옹호하는 통합적인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신탁을 무시하고, 정치적 자결권을 침해하고 남한에서 특정한 정파들의 정치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미국의 점령정책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26쪽)

‘법정립적 폭력’에 그 근원을 찾아야 할 4·3의 특수성은 단지 가해 책임의 추구가 ‘불가능’하다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폭력의 ‘희생자’ 인정 자체에서도 풀기 어려운 아포리아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재일 제주인은 이러한 4·3의 아포리아를 전형적으로 체현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61쪽)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