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2024-03-29 11:40 (금)
>
[이슈]제11회 제주4·3평화문학상 당선작 선정
[이슈]제11회 제주4·3평화문학상 당선작 선정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03.13 20:3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 부문 한승엽의 <영남동>, 장편소설 부문 임재희의 <저녁 빛으로>
시 부문 한승엽, 장편소설 부문 임재희
시 부문 한승엽, 장편소설 부문 임재희

제11회 제주4·3평화문학상(4·3문학상) 당선작이 결정됐다.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현기영)는 13일 “시 부문에서 한승엽(57, 제주)의 <영남동>과 장편소설 부문에서 임재희(59, 서울)의 <저녁 빛으로>를 제11회 4·3문학상 당선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논픽션 부문은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고희범)이 주관하는 4‧3문학상은 지난해 5월 16일부터 12월 9일까지 전국 공모를 진행했다.

그 결과 국내외에서 199명이 응모했고 시 1021편, 장편소설 86편, 논픽션 10편 등 모두 1117편이 접수됐다.

시 부문 당선작 <영남동>은 4·3 당시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에 의해 사라진 한라산 중산간 마을을 다루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무게감과 완성도가 돋보였으며 직설적 화법을 피하면서도 4·3의 현실이 생동감 있게 상기된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저녁 빛으로>는 버지니아공대 총격사건을 소재로 폭력과 상실에 대한 기억을 보듬고 살아가는 3명의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은 “집요하게 파고들어 드러낸 폭력과 공포의 무늬가 분명하고, 디아스포라의 질곡을 깊이 경험한 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생생한 언어로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4·3문학상은 4·3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수준 높은 문학작품을 발굴하기 위해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정하고 제주4·3평화재단이 주관하고 있으며 상금은 장편소설 5천만원, 시 2천만원, 논픽션 2천만원이다.

한편 시상식은 오는 4월 18일 오후 3시 제주문학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4.3평화문학상 수상자
4.3평화문학상 수상자


◆시 부문 심사평

꿈인 듯 다녀간 팬데믹의 재난이 수그러들었다 해도 우리는 아직 전대미문의 그 미몽에서 헤쳐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후유증을 영원히 안고 가야 할 이런 큰 시련 후에는 단단해지기보다 제살 일이  급해 오히려 의기와 공동체의 중요성도 상실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바에 ‘혈연공동체’가 급격히 약화되고 ‘친연공동체’의 시대가 도래한 것 역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바른 역사인식과 더불어 문학의 힘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매년 이어지고 있는 제주4·3평화문학상에 임하는 모든 이들의 생각이 이와 다르지 않다 믿습니다.  벅찬 듯 보이던 제주4·3평화문학상의 이력이 벌써 열 한 해째에 이르러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레 합의되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4·3항쟁의 기록과 실상이 적잖이 축적되었고, 문학상 자체가 확고한 위상을 마련한 이즈음에 동어반복의 환에서 진일보하자는 인식이 언급되었습니다. 응모요강에서 강조하는 바, 4·3정신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을 깊이 새기면서, 문학적 형상화와 소박한 안목도 세심히 살핌으로써 보다 단단한 제주4·3문학상이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여타 문학상과 달리 큰 주제가 주어진 응모에는 그만큼 제약과 자기검열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매해 늘어나는 응모작과 고른 수준을 대하면 미래가 유래에 닿아 있다는 것이 상식이며 우리 모두 담당해야 할 책무임이  분명합니다.

본심에 올라온 여덟 분의 작품을 읽어내고 한 작품을 선정한다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었습니다. 우선 대상작 모두 상이한 제 목소리들을 내고 있었고 심사위원들 성향 또한 제각각이라 한가지  결론을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무기명 일련번호로 호출된 여덟 분을 우선 네 분으로 줄이고, 거기서 다시 두 분을 논의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열편의 시는 한 사람의 문학적 역량을 헤아리기에 어느 정도 충분한 양입니다. 모두 뛰어난  가작이라 할 순 없어도 일관된 정서와 성취를 발견할 수 있어 논의 끝에 응모작 <영남동>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깊고, 무게감과 완성도가 돋보였으며 직설적 화법을 피하면서도 4·3의 현실이 생동감 있게 상기되고 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영남동은 한라산 중산간 마을로 토벌대의  토화 작전에 의해 지금은 사라진 지명입니다. ‘안개가 귀띔해준 얘기’로 제주 남향 첫 마을엔  4·3의  현실이 길게  펼쳐지며, 그것이 ‘지상의 마지막 화전’이길 바라는 슬픈 소망이 되고, '세상 한구석 어둠의 체위를 바꾸려고/서로 이마를 맞대 푸른 잎을 피워 올릴' 다짐으로 이어집니다. 지금은 부재한 지명을 복원시키며 4·3의 정신과 미래가 맞닿아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해를 거듭하며 응모작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역시, 하면서도 다소 놀라운 일입니다. 그만큼 4·3 항쟁이 우리 현대사의 아픔에 그치지 않고 인류 보편적 지향을 함유한 세계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는 증거라 하겠습니다. 팬데믹의 대재앙이 극복되는 듯하지만 거듭될 인류의 시련을 떠올리면 문학의 길 역시 새롭게 다짐을 해야만 합니다.

다른 분들의 작품 ‘북받친밭’,'다랑쉬마을', '실비디움 엔시폴리움', ‘폭낭의 이름으로’도 깊은 인상을  주는 시들이었습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작품들의 기복이 심한 점, 모호성을 극복 못한 부분, 능숙하기는 하나 부족한 신선함, 토속어와 지명의 부적절한 남용, 과한 한자어 사용, 서정이 뛰어나나 너무 소품들인 점 등  다소의 아쉬움으로 다음을 기약하게 되신 그 분들께도 큰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시  부문 심사위원 김병택, 김사인, 박철

◆장편소설 부문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끝이  없는…> <다정한  이웃> <꼬랑지가 개를 흔든다고><한 티끌 남김없이><저녁 빛으로>이렇게 다섯 편이었다.

일단, 읽고 난 뒤의 공통된 의견은 ‘소설 읽는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였다. 진지하다 싶으면 너무 무거웠고 잘 정리되었다 싶으면 단조로웠으며 자유롭다 싶으면 지나치게 가벼웠다. 

그래서 우리는 완성도 보다는 작품 속에 숨어있는 역량, 즉 성장 가능성을 찾아 들어갔다.

<끝이 없는…>은 베트남 참전 군인의  이야기인데 그 고통스러운 기억에 의한 정서 반응이 솟아
나는 대신 ‘역사의식의 과잉’에 대한 걱정이 먼저 일고 말았다. 강박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였으니까. 

묘사와 진술에도 여백이  없어  몰입하기가  어려웠으니  보여주고  싶은  것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데 실패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굉장한 역사 진실’을 지극하고 촘촘하게, 약간의 기교만  더해 쓰면 소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종종 되풀이되는 실수를 이 작품에서도 발견한 것이다.

<다정한 이웃>은 접경지역의 역사와 역설의 생태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도 진술과 묘사가 과도해서 최대한 많은 말을 통해 모든 것을 다 알려주고 싶어 하는 욕심으로 보였다. 그러다 보니  다섯  권짜리 대하소설을 장편 한 편에 억지로 욱여넣은 느낌이다. 

소설은 ‘알려주기가 아니라 보여주기’ 라는 격언을 또다시 확인시켜 준 셈이다. 거기에, 워낙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다 보니 존재 이유와 상징이 서로 겹치는 부분도 상당했다. 소설은 의외로 많은 부분에서, 발언보다는 침묵, 생략이 더 큰 효과를 만들어내는 장르이다.

<꼬랑지가 개를 흔든다고>는 명랑 소년만화풍이다. 나름의 의미 있는 소재지만 등장인물들이 의도적 역할형인 게 가장 걸렸다. 생명력이 안 느껴졌다는 소리.

무엇보다도 위악을 베이스로 하는 설정은 스토리를 이끌고 가는 능수능란의 위트가 필요한데 거기에 못 미친 느낌이다.

결국 우리는 <한 티끌 남김없이>와 <저녁 빛으로> 두 작품을 두고 최종심에 들어갔다.

<한 티끌 남김없이>는 처절한 인생을 처절하지 않게, 깔끔하게 처리한 점이 눈에 쏙 들어왔다.
4.3의 비극에 낯선 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점을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였다. 

단조롭게 되풀이되는 패턴이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만 것이다. 서사는 농과 담, 가속과 감속의 효과적인 배치가 있어야 텔링의 묘미가 살아난다는 점을 유의하면 좋겠다.

당선작으로 뽑은<저녁 빛으로>도 단점은 있었다. 단조로운 구성, 자주 등장하는 우연, 에피소드의  객관적인 제시보다는 감정을 우선시하는 버릇, 같은 거 말이다.

하지만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단기필마라고 할까, 정체성을 찾기 위해 집요하게 파고든 덕에 폭력과 공포의 무늬가 분명하고 확실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출혈의 시작점을 끝내 찾아내고 말았다고나 할까. 거기에 디아스포라의 질곡을 깊이 경험한 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생생한 언어들이 그 집요함을 감싸고 있는 게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통로로 기능을 하고 있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는 동시에 조금 더 분발을 요구하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장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공선옥, 공지영, 한창훈

◆논픽션 부문 심사평

제11회 제주 4·3평화문학상 논픽션에는 9작품이 응모하였다. 심사위원들은 4·3평화문학상의 주제인  ‘4·3의 진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에 초점을 두고 응모작을 꼼꼼히 읽은바, 각 작품이 논픽션으로서 갖는 문학적 성취를 중심으로 심사를 진행하였다.

응모작들 모두 논픽션의 글쓰기를 바탕으로 4·3평화문학상의 주제와 밀접히 연관한 주제를 소화하고 있다. 

다만, 논픽션은 문학적 상상력을 개성적으로 표현하는 심미적 글쓰기에 비중을 두는 것과 차이를  둔다는 점에서, 이번 응모작들과 관련하여 좀 더 좋은 논픽션 글쓰기에 참조가 되었으면 하는 몇  가지 점을 언급한다.

무엇보다, 응모작들 대부분은 전대미문의 4·3의 역사적 참상을 주목하여 이른바 ‘기억의 정치’를 치열히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다루고 있는 4·3 관련 역사와 피해의 참상 등의 대부분은 이미 다른 곳(문학을 포함한  문화예술 분야)에서 기록 및 증언한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데 비중을 두어, 논픽션이 지닌 특장(特長)인 ‘발견으로서 감동’의 측면이 희석되고 있다. 글쓰기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한  낯익은 접근이 초래하는 진부함이다. 

특히 4·3에 대해 기존 알려진 크고 작은 역사와 이야기가 자칫 4·3에 대한 정형화와 화석화로 치우치는 것은 4·3의 현재진행으로서 글쓰기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논픽션의 특성을  염두에 둔 글쓰기는, 문학적 상상력으로서 서사적 표현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심지어 그것을  넘어서는 논픽션만의 독특한 서사적  감동을  배가시켜야  한다. 

이것은 그만큼 보고문학적 성격으로서 논픽션의 글쓰기에 천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4·3의  역사적 진실은 물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에  해당하는 주제에  대해 논픽션적  접근은 해당 주제에 대한 사실성을 바탕으로 집요하게 탐사하되 그 주제에  매몰되는 게 아니라 해당  주제가 다른 인접 분야와 어떤 보편적 가치(평화와 인권)와 맥락을 자연스레 형성하는지를  깊이  있게  숙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글쓰기에 해당하는 것을 상기하고 싶다. 글쓰기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문장력이 바탕을 이뤄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올바른 어법과 한국어의 표현력을 가다듬은 문장을 구사해야 한다. 물론, 개성있는 문장을 쓴다면 더 좋겠다. 인용문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피해야 한다.
인용문이 지나치게 빈번한 것은 곧 자기 생각을 이끌어갈 주체적인 생각이 부족하다는 증표다. 인용한 자료를 최대한 자기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들을 중심으로 응모작을 심사하면서, 아쉽게도, 심사위원들은 이번 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에는 당선작을 내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자칫 기대보다 낮은 수준의 작품을 선정하면, 이 문학상의 표준이 함께 낮아지기 때문에, 한번 더 내년 응모작을 기대하기로  했다. 

이것은 그만큼 4·3평화문학상으로서 논픽션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 자못 크다는 점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논픽션 글쓰기에 정진하는 모든 이들의 치열한 작업에 경의를 표한다.

논픽션 부문 심사위원 고명철, 김응교

◆시 부문 당선자 한승엽

1966년 제주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2006년 <문학예술>로 등단
시집 <몰입의 서쪽> <별빛 극장>
천강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등대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부문 당선자 임재희

1964년 강원도 철원 출생
1985년 미국 하와이주로 이민
미국 하와이주립대학교 사회복지학 전공
서울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 박사과정 수료
2013년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당신의 파라다이스> 발표
장편 <비늘>, 소설집 <어디에도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라이프 리스트> 발표
<블라인드 라이터>, <예루살렘 해변>, <모호한 상실> 번역

◆ 당선작 '영남동'

한라산 남쪽 아래 첫 마을
안개가 귀띔해준 얘기 때문에 옷깃을 여미고 있다
이윽고 무리 지어 올라오는 광기의 눈빛에도
머릿속은 말라버린 층계 밭에 갇혀 멈칫멈칫 헤매는데
악몽처럼 올레는 아찔한 소란에 어둑해지고
고막을 때리듯 문짝이 부서지더니 지붕이 활활 타올랐다
와들와들 울부짖는 불기둥, 신들린 것 같았다
기댈 벽도 없이
저절로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대물림할 수 없는 것들만 넋 나간 채 나뒹굴고
한 죽음이 또 다른 죽음의 눈을 감겨주는 찰나에도
우물에 갔다는 누이도 연기처럼 돌아오지 않아
숯검정을 쓴 채 정체 모를 벽에 휩싸여
검은 하늘이 지붕이고
잃어버린 번지수가 달빛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서성거리는 우주의 끝에선
잠들지 않는 물소리가 흰 그늘로 길게 흘러가고
늑골로 빠져나간 바람까마귀가 대숲을 빙빙  돌다
기어이 지층을 깨우듯 울음을 터뜨리던
지상의 마지막 화전(火田)
거칠게 멍든 살갗이 바짝 곤두서고 있다
눈물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 알았기에
허상의 벽과 벽을 지우며
상처가 아무는 자리에 피 울음의 뿌리라도 처연히 솟아날까,
영영 폐족을 꿈꾸지 않았던 이름들
주름 깊은 웃음으로 기꺼이 밤길을 헤치고 돌아와
세상 한구석 어둠의 체위를 바꾸려고
서로 이마를 맞대 푸른 잎을 피워 올릴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