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85) 부족국가 고조선 부여 역사 이야기 종합
[장영주 칼럼](85) 부족국가 고조선 부여 역사 이야기 종합
  • 뉴스N제주
  • 승인 2023.02.26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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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84 맨 마지막에 부여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한 바 있다.

이에 우리나라 부족국가로 알려진 고조선과 부여에 대한 종합적인 역사 이야기를 덧 붙임으로 고구려 신라 백제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려 한다.

출처 네이버지도
출처 네이버지도

기원전 109년경 북쪽에 있던 고조선이 멸망하면서 부여에서 나온 고주몽이 고구려를 세운다. 고구려를 거쳐 나온 온조세력이 백제를 세운다. 고조선 유민으로 맨 마지막  김수로는 초기철기문화로 고대 가야시대를 맞는다.

우리나라 역사도표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탐라 발해 후삼국 고려 조선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민국으로 이어온다.

○ 고조선 역사 이야기

고조선(古朝鮮)은 한국사의 첫 국가 모태이다. 고조선 건국 이후 우리 역사에는 부여와 고구려, 진국, 삼한 등 다양한 국가가 들어섰다. 우리 역사에서는 고조선을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등 시기와 성격을 달리하는 3가지 정치체를 포함해 통칭하고 있다. 

이에 대한 사료로는 단군신화를 묘사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등의 기록과 춘추전국 시대 이래 고조선이 국가로 성장해 중국과 관계한 내용을 기록한 《관자》 《산해경》 등 선진 시대의 문헌이 있다. 

그리고 진한 교체기 중국과의 본격적인 대결 속에 전개된 위만조선 관련 기록인 《사기》 《한서》와 《삼국지》가 인용한 《위략》 기록 등에서 장기간에 걸친 역사로 표현되어 있다(출처 이하 네이버 백과).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 고조선 초대왕 단군

단군조선은 한민족 최초의 국가로 《삼국유사》에서 최초 언급되었다. 일반적으로 고조선의 역사를 왕조 또는 지배자 단군이 다스렸던 첫 번째 시기를 지칭한다. 단군이 나라를 세워 1000여 년 동안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단군조선은 단군이 무진년(기원전 2333년)에 아사달 또는 평양에서 건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문자 기록이 미비했던 시기의 고대 국가였던 탓에 단군조선과 관련된 기록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단군왕검, 초대 군주 후임 부루(신화상) 부친 환웅 모친 웅녀 배우자 하백의 딸 자녀 부루로 단군 또는 단군왕검은 한민족의 신화 시조이자 고조선의 창건자로 전설적인 인물이다.

단군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 《동국통감 외기》 등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2333년경에 아사달 또는 평양에 도읍을 두고 조선을 건국하여 조선을 다스렸다고 한다.

박달나무는 환웅이 내려온 곳이 신성한 박달나무(神檀樹)이며, 단군이 태어난 곳은 박달나무 아래이다.

환웅이 내려왔다는 태백산은 현대 한국인들은 당연히 한반도 최고봉인 백두산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단군이 나라를 일으킨 곳은 평양이라 한다.

단군과 관련된 대표적인 성지로는 단군릉, 구월산, 마니산 참성단, 사직단 단군성전이 있다.

○ 부여 역사 이야기

부여는 기원전 2세기부터 494년까지 만주 지역 일대에 존속했던 예맥족의 국가를 말한다. 고조선 후기부터 삼국시대 중기까지 존재했다. 고조선과는 별개이며 고구려와 백제의 조상에 해당한다.

<형벌은 엄하고 각박하여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집안사람은 노비로 삼는다. 도둑질을 하면 물건의 12배를 변상하게 하였다. 간음한 자와 투기가 심한 부인은 모두 죽였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부여에 관해 기록된 내용이다  

고조선지역에 부여라는 나라가 세워지고 이 부여는 주변 선비족 연나라와 또 남쪽의 고구려와 영토전쟁을 벌이다 연나라에 패하고 고구려에 합병되고 만다.

○ 부여의 역대 국왕

부여/동명왕 부태왕 위구태왕 간위거왕 마여왕 의려왕 의라왕 현왕 잔왕
북부여/해모수왕
동부여/해부루왕 금와왕 대소왕
갈사부여/갈사왕 도두왕
졸본부여/연타발 동명성왕
남부여/성왕

● 동명왕 설화 스토리

동명왕은 부여의 북쪽에 있었던 고리국에서 태어나 부여를 건국한 사람이다. 서기 60년경 《논형》이란 책에는 부여의 건국 시조로서 동명왕이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 중국 문헌인 《위략》 《후한서》 부여전 《양서》 고구려전에는 부여의 시조가 동명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논형과 위략 등의 기록에 따르면, 고리국왕이 외출을 한 사이 시중을 드는 소녀가 하늘의 기운을 받아 임신을 하였다. 왕은 소녀가 남자 아이를 낳자 돼지우리, 마구간에  버렸으나, 돼지와 말이 아이를 품어주어 살아남았다. 

왕이 아이를 신령스럽게 여겨 돌려주고 기르게 하였으니, 그 아이가 바로 동명이다. 장성한 동명이 활을 잘 쏘고 용맹을 떨치자 왕이 동명을 죽이려 하였다. 동명은 남쪽으로 도망쳐 엄호수를 건너 부여에 이르러 왕이 되었다. 이후의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 해모수왕 설화 스토리

해모수는 천제 동명왕의 아들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해모수가 죽자 해부루가 왕위를 승계했고, 해부루가 다시 아들이 없어 하늘에 기도를 드린 후 양아들 금와왕을 얻은 뒤, 해부루 사후 금와가 정권을 계승하였다. 

그런데 해부루 만년에 다시 하늘에서 내려온 해모수가 나라를 세우려 하니 천제가 재상 아불란의 꿈에 나타나서 자신의 아들이 나라를 세울 테니 떠날 것을 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해모수가 압록강 하백의 딸 유화를 유혹하여 임신시킨 뒤 사라졌으며, 임신 후 아버지 하백의 진노로 쫓겨난 유화를 금와왕이 거둬서 후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고구려의 건국 신화에 따르면, 해모수는 하백의 딸 유화를 유혹하여 붙잡아 동침하였다. 이에 하백이 항의하자 해모수는 자신이 천제의 아들임을 밝히고, 신령한 능력을 보여 천제의 아들임을 입증한 뒤에 정식으로 혼례를 치렀다. 

그러나 하백은 해모수가 유화를 버릴 것을 걱정하여 해모수를 취하게 한 뒤 유화와 함께 가죽부대에 넣고 오룡거를 태워 하늘로 올려보냈다. 

해모수는 도중에 깨어나 하백의 처사에 분노하여 유화를 버려두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버려진 유화는 금와왕에게 발견되었고, 해모수는 햇빛으로 유화를 수태하게 하여 주몽을 낳았다.

해모수는 고니를 탄 100여 인의 종자를 거느리고 하늘로부터 오룡거를 타고 채색 구름 속에 떠서 내려왔다.

 성 북쪽에 사냥을 갔다가 유화와 결혼하도록 해달라고 하백에게 간청하였다. 하백은 해모수의 신통력을 시험한 뒤에 그에게 신변(人智로 알 수 없는 무궁무진한 변화)이 있음을 알고 술을 권하였다. 하백은 해모수가 술이 취하매 유화와 함께 가죽가마에 넣어서 하늘로 보내려 하였다. 

그런데 술이 깬 해모수는 놀라서 유화의 비녀로 가죽가마를 찢고 혼자 하늘로 올라가 돌아오지 않았다. 하백은 유화를 꾸짖으며 태백산 물 속에 버렸다《삼국유사》.

● 해부루왕 설화 스토리

부여왕 해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 아들 낳기를 기원하였다. 하루는 그가 탄 말이 곤연에 이르렀는데, 그 곳에 있던 큰 바위를 보고 말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바위를 치워보게 하였더니, 금빛이 나는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해부루가 기뻐하여 "이는 하늘이 내게 준 아이로다."라 말하며 아들로 삼으니, 이가 곧 금와이다.

● 금와왕 설화 스토리

해부루의 뒤를 이어 부여의 왕이 된 금와는, 태백산 남쪽의 우발수에서 사냥을 하다가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나 유화를 방에 가두었더니 내리쬐는 햇볕을 받고 잉태하여 알을 낳았는데, 금와왕은 그것을 보고 알을 버리게 하였는데 짐승이 알을 밟지 않고 도리어 품어주는 등 기이한 일이 생기자 유화부인에게 그 알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 알에서 뒤에 고구려의 시조가 된 추모왕이 나왔다.

● 어별성교 설화 스토리

어별성교(魚鱉成橋)는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 고주몽의 신화에서 물고기와 자라들이 다리를 만들어서 고주몽을 구해 준 사건을 일컫는 일화이다.

고주몽 신화에 따르면, 유화를 동부여의 왕 금와가 보호하고 있을 때, 해모수가 햇빛이 되어 나타나 유화를 임신시킨다. 산일이 되자, 유화부인이 낳은 것은 사람이 아니고 거대한 알임에, 이를 괴이하게 여긴 금와왕은 알을 산에 갖다 버리게 하였으나, 버릴 때마다 산 짐승들이나 새들이 알을 보호해서 다시 궁궐로 가져 오매, 금와왕은 그 알에 신성한 뜻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여 유화 부인에게 돌려주었는데, 그 알에서 태어난 것이 고주몽이다.

주몽은 장성하면서 그 인물이 너무 출중해져서, 대소 태자를 비롯한 금와왕의 아들들에게 시기를 받게 되고, 급기야 대소태자 형제들은 주몽을 죽일 음모를 꾸미게 된다. 그러나 주몽은 이를 먼저 알아차리고, 오이, 마리, 협부 세 사람의 심복을 데리고 동부여의 궁을 탈출한다. 이를 알아차린 대소태자 형제들은 즉시 군사를 이끌고 추격을 시작한다.

주몽, 오이, 마리, 협부 네 사람은 도망가던 중 앞에 큰 강을 만나 더 도망갈 수가 없게 되자, 주몽이 천신에게 자신이 천신의 손자임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올리자, 갑자기 강 위에 거대한 물고기와 자라 들이 떠올라서 다리를 만들어 주매 주몽과 세 명의 부하는 물고기와 자라 들의 등을 밟고 무사히 강을 건넜으나, 그들이 강을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들은 모두 물속으로 들어가, 대소태자 일행은 더 이상 추격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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