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88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장영주 칼럼](96) 고구려 왕 이야기(11)...제16대 고국원왕(재위 기간 331년 2월 ~ 371년 10월 23일 40년 8개월) [장영주 칼럼](96) 고구려 왕 이야기(11)...제16대 고국원왕(재위 기간 331년 2월 ~ 371년 10월 23일 40년 8개월) 주) AI 시대에 한국왕조설화도 이에 발맞춰 새로운 기획을 하고 있다. 최대한 글 내용에 맞게 그림을 그려라 명(그려줘!) 했지만 사실 AI는 서양 프로그램이라 동양적 사고로 고구려 장수, 병사, 성을 그리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차츰 나아질 것이란 기대로 여기서라도 계속 고구려 환경을 올리므로 AI가 인지하는 정보를 갖게 노력하고자 한다.때는 339년, 고국원왕은 전연과 직접 싸우기보다는 일단은 동맹을 요청하였다.때는 340년, 태자를 전연에 보내 조회하는 방식으로 온건책을 폈다.잠깐, 전연이란?오호십육국 시대에 선비족의 모용부가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3-12-28 20:35 [장영주 칼럼](95) 고구려 왕 이야기(10)...제15대 미천왕(재위 기간 300~331년) [장영주 칼럼](95) 고구려 왕 이야기(10)...제15대 미천왕(재위 기간 300~331년) 미천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5대 왕이다. 서천왕의 손자로 아버지가 봉상왕에 의해 반역혐의로 죽임을 당하자 피신해 소금장수를 하며 살다가 봉상왕 폐위 후 국상 창조리 등에 의해 왕으로 옹립되었다. 영토 확장 및 왕권 안정화로 고구려의 발전에 크게 기여, 고구려 전성기의 뿌리를 마련한 명군이었다.나무위키에 의하면,予野人, 非王孫也。請更審之。나는 야인이지 왕의 후손이 아닙니다. 부디 다시 살펴보십시오.창조리의 부하들이 자신을 찾아내자 의심하며 한 말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미천왕의 말이다.훗날 미천왕이 되는 을불은 서천왕의 차남 돌고의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3-09-17 02:21 [장영주 칼럼](94) 고구려 왕 이야기(9) [장영주 칼럼](94) 고구려 왕 이야기(9) ○ 봉상왕봉상왕은 고구려 제14대 왕(292년–300년 재위) 서천왕의 첫째아들로 이름은 상부 또는 삽시루라 불렀다.주) 역대 고구려 왕들의 본명을 알아봅니다. 두세 개의 이름을 가졌어도 하나만 올렸습니다. 출처 다음 커뮤니케이션추모성왕(주몽) 유리명왕(유리) 대무신왕(무휼) 민중왕(해색주) 모본왕(해우) 태조왕(궁) 차대왕(수성) 신대왕(백고) 고국천왕(남무) 산상왕(연우) 동천왕(우위거) 중천왕(연불) 서천왕(약로) 봉상왕(상부) 미천왕(을불) 고국원왕(사유) 소수림왕(구부) 고국양왕(이련) 광개토태왕(담덕) 장수왕(거련) 문자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3-08-15 12:21 [장영주 칼럼](93) 고구려 왕 이야기(8) [장영주 칼럼](93) 고구려 왕 이야기(8) ○ 서천왕삼국사기 원문 읽기, 고구려 본기와 기타 자료를 덧붙여 보면, 고구려 제13대 왕 서천왕은, 출생(미상) 사망92(서천왕 23) 재위(270년~292년) 서양왕이라고 하며 이름은 약로 또는 약우, 사후 서천지원에 묻혔다.255년(중천왕 8) 태자로 책봉되다.270년 12월 중천왕이 죽자 즉위했다.271년 서부 대사자 우수의 딸을 왕비로 삼았다. 그해 국상 음우가 죽자 그의 아들인 상루를 국상에 임명했다(아래 야화 참고).276년 4월 신성에 행차했다가 그해 8월에 돌아왔다.주) 신성은 오늘날의 중국 푸순 부근에 있었던 고이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3-07-18 22:53 [장영주 칼럼](92) 고구려 왕 이야기(7) [장영주 칼럼](92) 고구려 왕 이야기(7) 며칠 후 중천왕이 심복들과 함께 기구로 사냥을 떠났다.관나부인은 시녀 초화를 불렀다.“사람 하나는 족히 들어갈 가죽 부대를 구해 오너라.”시녀가 가죽 부대를 가져와 바치자 관나부인은 주위를 살피며 소곤거렸다.“폐하께서 사냥에서 돌아오실 때쯤 내가 이 부대 안에 들어갈 테니 너는 주둥이를 끈으로 묶은 후에 궁인들을 시켜 중문으로 운반토록 해라.”며칠이 지나 왕이 사냥을 마치고 돌아왔다. 신하들의 인사를 받고 내궁으로 들어가려는데 궁인들이 가죽 부대를 들고 중문으로 나오고 있었다.“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이냐?”“왕후 폐하의 명을 받고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3-07-03 17:46 [장영주 칼럼](91)고구려 왕 이야기(6) [장영주 칼럼](91)고구려 왕 이야기(6) 주) 필자는 1986년 지우문예 추천 작가이다.80년대는 설화와 역사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이다. 이때 소년 소녀 『한국의 역사』 일문당, 1987년 전 12권을 접하게 된다. 이 책은 하늘의 자손 단군에서 시작하여 조선왕조까지를 한데 아우르는 대 서사시적 드라마이다. 야화와 전설, 실담과 변형되어 내려오는 비슷한 이야기까지 한대 아우러진 설화소년소설인 셈이다.필자는 지금까지 이 책 1권에 나타난 이야기를 토대로 이에 맞는 사료를 찾아 덧붙여 마사지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자의 소견까지도 곁들여 왔는데, 마침 고구려 제12대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3-07-01 17:25 [장영주 칼럼](90) 고구려 왕 이야기(5) [장영주 칼럼](90) 고구려 왕 이야기(5) ○ 제10대 임금 산상왕(197~227)산상왕이 왕위에 오른지 오래 되었으나 왕자가 없었다.왕과 왕비는 높은 산과 깊은 강을 찾아다니며 왕자를 낳게 해 달라고 빌었다.그러던 어느 해 겨울,왕은 신하를 데리고 사냥을 하러 나갔을 때 마침 산돼지 한 마리가 앞을 지나갔다.왕은 활을 쏘았으나 산돼지는 달아났다.왕은 신하들과 같이 산돼지를 쫓아 ‘주봉촌’이라는 곳까지 갔다.왕은 산돼지가 달아난 주봉촌을 바라보고 있을 때, 웬사람들이 달아났던 산돼지를 잡아 왔다.왕은 어디서 잡았느냐고 물었다.“대왕께서 산돼지를 쫓아 이 고개로 넘어오실 때,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3-06-23 16:01 [장영주 칼럼](89)고구려 왕 이야기(4) [장영주 칼럼](89)고구려 왕 이야기(4) ○ 고구려 9대 고국천왕(179-197)신대왕이 세상을 떠나니 왕을 이어받은 이가 제9대 고국천왕이다.고국천왕은 왕후의 친척인 어비류, 좌가려 등에게 벼슬을 주어 나랏일을 보게 하였으나 외척정치는 국정을 어지럽히고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등 행패가 심하므로 이들을 잡아 처형하였다.왕은 이런 일을 교훈 삼아 동부 사람 안류를 등용하여 국정을 맡기고 을파소를 국상으로 삼았다.진대법이란?고구려 제9대 고국천왕 16년(194)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이때부터 해마다 3월에서 7월 사이에 나라의 곡식을 백성들에게 내어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3-06-03 04:15 [장영주 칼럼]광령1경(무수천1경) 폭포 [장영주 칼럼]광령1경(무수천1경) 폭포 □ 광령 1경(무수천 1경) 폭포제주 서귀포 하루(2023년 5월 4일) 강수량 261㎜ 5월 최대 기록, 어린이날을 앞두고 제주에 많은 비가 내린 가운데 제주도 남부 서귀포의 4일 하루 강수량이 5월 기록으로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4일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30분 기준 서귀포의 일 강수량은 261㎜로, 1961년 이곳에서 관측을 시작한 이래 5월 일 강수량 기록 역대 1위를 갈아치웠다.종전 최고치는 1992년 5월 6일 259.8㎜였다. 이어 2015년 5월 11일 220.5㎜, 1995년 5월 20일 21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3-05-09 09:37 [장영주 칼럼](88) 고구려 왕 이야기(3) [장영주 칼럼](88) 고구려 왕 이야기(3) ○ 고구려 7대 차대왕수성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고구려 7대 임금이 차대왕이다.수성은 왕위에 오른 후 미유를 우보로 정하고, 어지류를 좌보로 정하였으며, 양신에게는 중의 대부 벼슬을 주었다.차대왕은 자기가 임명한 모든 벼슬아치를 불러 놓고“모든 일이 나의 뜻대로 이루어졌도다. 이는 그대들이 과인을 위하여 애쓴 덕분이다. 그대들은 계속 과인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라.”만족한 듯이 신하들을 내려다보았다.그러나 차대왕 충신 복장은 자기가 죽게 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나는 선왕의 가까운 신하로 수성 일파의 흉계를 알고 있었다. 전 임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3-04-30 21:38 [장영주 칼럼](87) 고구려 왕 이야기(2) [장영주 칼럼](87) 고구려 왕 이야기(2) 85회 이전 칼럼에서는 고구려 3대 왕까지 부여와 관련된 스토리를 연결했는데, 여기서 잠깐 고구려 전체 왕조 족계를 정리한 다음 4대 왕 스토리부터 이어 나가려 한다(1대∼3대 약술 후).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세워져서 668년 멸망했다.○ 1대 동명성왕(고주몽)(BC37-BC19) 고구려 건국고구려 건국 시조 고주몽 이야기, 유화 품 안에 햇빛이 비쳐들어 이로 인해서 임신하게 되었는데 신작 4년 계해(기원전 58년) 4월 주몽을 낳았다. 주몽은 울음소리가 대단히 우렁차고 골격과 풍채가 뛰어나고 기이하였다.태어날 때 왼편 겨드랑이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3-03-27 00:05 [장영주 칼럼](86) 부족국가 고조선 부여 역사 이야기 종합(2) [장영주 칼럼](86) 부족국가 고조선 부여 역사 이야기 종합(2) 고조선 멸망 이후 유민들은 만주, 한반도로 흩어지게 되는데 고조선 중심지는 ‘한사군’ 이 설치되어 한나라 관리의 직할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이 외 고조선 유민들은 변방으로 밀려나 ‘부여’ 등 조선인들의 나라를 건국했다(참고 어린이 한국 역사).부여는 송화강 유역에 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 갈사부여, 남부여(이건 백제) 등 다양한 부여국가가 존재하며 나중에 고구려의 체제를 승계하게 된다.부여 동명왕과 고구려 동명왕은 이름이 유사하다. 고구려 1대왕 동명성왕 주몽이 부여에서 탈출해 고구려를 세우는 건국신화는 이전 부여에도 비슷한 동명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3-03-23 13:56 [장영주 칼럼](85) 부족국가 고조선 부여 역사 이야기 종합 [장영주 칼럼](85) 부족국가 고조선 부여 역사 이야기 종합 칼럼 84 맨 마지막에 부여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한 바 있다.이에 우리나라 부족국가로 알려진 고조선과 부여에 대한 종합적인 역사 이야기를 덧 붙임으로 고구려 신라 백제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려 한다.기원전 109년경 북쪽에 있던 고조선이 멸망하면서 부여에서 나온 고주몽이 고구려를 세운다. 고구려를 거쳐 나온 온조세력이 백제를 세운다. 고조선 유민으로 맨 마지막 김수로는 초기철기문화로 고대 가야시대를 맞는다.우리나라 역사도표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탐라 발해 후삼국 고려 조선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3-02-26 03:34 [장영주 칼럼](84)대무신왕(고구려의 기틀을 다진 왕) [장영주 칼럼](84)대무신왕(고구려의 기틀을 다진 왕) 대무신왕은 고구려 3대 임금(재위 18~44)으로, 광개토대왕릉비문에도 추모왕(동명성왕)과 유리명왕의 업적을 이어서 나라의 기틀을 다진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대무신왕은 유리명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이름은 무휼이며,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며 출중한 기상이 있었다.때는 서기 9년, 부여의 사신이 고구려에 왔다.부여 사신은 고구려에 조공을 바칠 것을 요구하고, 이를 거절하면 고구려를 멸망시키겠다고 협박했다.이때, 유리명왕과 대신들은 이 요구를 받아들이고자 했다.그런데 어린 무휼 왕자가 조정에 나가 부여가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3-02-21 20:29 [장영주 칼럼](83) 고구려의 발전(제웅) [장영주 칼럼](83) 고구려의 발전(제웅) 왕이 골구천에서 얻은 신마(神馬)를 타고 행군을 하다 이물숲에 당도하여 군막을 설치하고 야영을 하게 되었다.왕이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할 때, 어디선가 “쨍그렁 쨍그렁” 하는 소리가 들렸다.왕은 ‘벌떡’ 일어나 신하를 불러 주의를 샅샅이 살피라고 명령하였다.“적병이 매복되어 있는지 모른다. 쇳소리가 나는데 가서 살펴보아라.”신하가 쇳소리가 나는 곳을 군졸들을 데리고 가 살펴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사방을 찾아보았으나 아무런 것도 없사옵니다. 혹시 바람 소리가 아닌가 하옵니다.”그래도 임금은 의심스러워 영문 밖으로 나왔다.달은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3-02-14 00:12 [장영주 칼럼](82)고구려의 발전(저절로 밥을 짓는 솥) [장영주 칼럼](82)고구려의 발전(저절로 밥을 짓는 솥) 그러나 그것으로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마마, 깨어나소서.”“이 나라를 구하소서.”온 고구려 국민의 애도 속에 유리왕이 세상을 떠나자 ‘무휼’ 태자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잠깐, 신화가 된 무휼태자?나중에 대무신왕이 된 그는 고구려 시조 추모 성왕의 손자이다. 덧붙인다면 유리왕의 아들이다.고구려의 대장군 광개토대왕릉 비에 의하면 고구려를 연 3대 국왕 중 하나로 그의 나이 11세 때 태자로 책봉되었다.그의 태자 책봉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유리왕의 첫아들 ‘도절’이 17세 때 사망하므로 다음 왕자인 ‘해명’이 태자가 되었다.그런데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2-12-14 01:07 [장영주 칼럼](81) 고구려의 발전(부여와의 전쟁) [장영주 칼럼](81) 고구려의 발전(부여와의 전쟁) 고구려는 이웃 나라 부여와의 전쟁이 불가피해 졌다.특히 부여 금와왕이 세상을 떠나고 큰아들 대소가 왕위에 오르며 더욱 고구려를 위협하였다.유리왕 14년, 고구려 유리왕은 부여 대소왕의 요구대로 조공을 바치고 태자를 볼모로 보내려 하자 태자가 거부함으로, 대소왕은 노하여 5만여의 대군을 몰고 고구려로 쳐들어 왔다.주) 유리왕고구려의 제2대 왕이자 동명왕 주몽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예 씨고, 성장한 뒤 아버지 주몽이 남긴 징표인 부러진 칼을 찾아 주몽이 세운 고구려로 와서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곧 왕위에 올랐다. 북방으로 영토를 넓히고 수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2-12-10 08:47 [장영주 칼럼](80) 알에서 나오다!(알에서 나온 주몽) [장영주 칼럼](80) 알에서 나오다!(알에서 나온 주몽) 필자가 각색한 주몽천제는 ‘하늘의 황제’를 뜻한다. 그러나 원문에서 ‘천제’라는 단어의 용례가 사용된 경우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현재로선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 해모수의 아버지를 『삼국유사』 『동국이상국집』 등 역사서에서 ‘천제’라고 사용되어 있다.○ 알에서 나온 주몽기원전 어느 날,천제의 아들 해모수는 다섯 마리 용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하늘로부터 4백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웅심산 아래로 내려오는데,머리에는 관을 쓰고 허리에는 황룡 칼을 차고 있었다.“나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다. 이 땅은 나의 자손들이 대대로 다스릴 것이다.”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2-10-16 17:52 [장영주 칼럼](79)알에서 나오다!(고구려 건국 신화) [장영주 칼럼](79)알에서 나오다!(고구려 건국 신화) 중국 료녕민족출판사 주몽 이야기주몽은 고구려를 창조한 왕이다. 고구려 건국신화는 곧 주몽 이야기와 맥이 통한다. 여기서는 필자가 오래전 중국 모 도서관장(김재원)에게서 받은 구수한 조선 옛이야기 두 권 중 두 번째 책에 나오는 고구려 건국신화를 옮겼다.이 자료는 뒤에 필자가 엮은 주몽 이야기와 곁들여 읽으면 한결 주몽의 고구려 건국신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고구려 건국설화부여왕 해부루가 로년에 자식이 없어 아들을 하나 점지하여달라고 산천에 기도를 드렸다.그 후 왕이 탄말이 곤연이라는 못에 이르러 어떤 큰 돌을 보고 눈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2-10-08 11:50 [장영주 칼럼](78) 알에서 나오다!(천제의 아들 주몽) [장영주 칼럼](78) 알에서 나오다!(천제의 아들 주몽) 여러분!세계지도를 거꾸로 놓아 우리나라 한국을 보십시오.어떻습니까?바로 볼 때와 거꾸로 볼 때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그렇습니다. 거꾸로 보니 우리나라 한국 한반도는 세계지도의 중심에 있지 않습니까?조그만 탐라가 한반도가 대륙을 호위하며 넓은 태평양을 포용하고 있는 모습에서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유구한 전통과 설화를 간직한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사는 게 자랑스럽지 않습니까?우리 선조들은 우리 겨레의 슬기로움과 지혜로움이 한데 모여 훌륭한 문화를 꽃피웠으며 왕권이 백성을 섬기는 절대자의 발자취를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콘텐츠 장영주 칼럼 | 뉴스N제주 | 2022-10-03 07:30 처음처음12345다음다음끝끝